너무 당황해서 키보드가 제대로 안 잡히네요. 방금 관리사무소에서 CCTV 돌려보고 오는 길인데 심장이 아직도 미친듯이 뛰고 식은땀이 멈추질 않아요.
저 32살, 집에서 UI 디자인하면서 비숑 초코랑 단둘이 사는 사람입니다. 3년째 제 옆에 붙어있는 애가 제 가족이자 제 하루 전부예요. 오늘 오후 3시쯤 집 앞 편의점에 생수 사러 10분 나갔다 온 사이에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터졌습니다.
현관 앞에 서는데 도어락은 잠겨있는데 문틈이 1cm 정도 벌어져 있는 거예요. 가슴이 철렁해서 문 열고 들어갔더니 평소엔 현관에서 꼬리 미친듯이 흔들던 애가 안 보여요. 거실 식탁 다리 사이에 몸을 구겨 넣고 벌벌 떨고 있더라고요. 꺼내 안았는데 그 꼴을 보고 그 자리에서 다리 풀려 주저앉았습니다.
뽀얗고 복슬복슬하던 털이 온몸이 쥐 뜯어먹은 듯 듬성듬성 잘려 있었어요. 미용 실패 수준이 아니라 날카로운 가위로 마구잡이로 찢어놓은 거였어요. 귀 뒤랑 허벅지 안쪽은 가위 끝에 베였는지 살이 살짝 파이고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요. 제가 손만 대도 비명처럼 낑낑대며 몸을 피하는데 그 눈빛 보니까 속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대로 관리실로 뛰어 내려가서 복도 CCTV 돌려봤습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 딱 찍히는데 범인이 아래층 사는 초딩 남자애더라고요. 지난달에 제가 택배 상자 들고 비번 누를 때 뒤에서 어슬렁거리던 게 생각나는데 그때 훔쳐본 거였어요. 가위 하나 들고 대놓고 제 현관 비번 누르고 들어가더니 5분 있다가 주머니에 털 뭉치 넣고 나오는데 표정이 진짜 소름끼치게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바로 아래층 내려가서 부모 불러 따졌죠. 처음엔 우리 애가 왜 그러겠냐며 목소리부터 높이더니 CCTV 영상 틀어주니까 태도가 돌변하더라고요. 하는 말이 “애가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쓰다듬어주다 그랬나 보죠, 털이야 금방 자라는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세요?” “평소에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선생님이 우리 애를 째려봐서 애가 스트레스 받아서 장난친 거 같은데 그쪽도 책임 있지 않나요?” 사과 한마디 없이 적반하장으로 따지는데 눈앞이 진짜 노랗게 변하더라고요.
초코는 바로 병원 데려가서 소독하고 연고 바르고 왔어요. 원장님이 몸 상처보다 정신적 충격이 커서 당분간 사람 손길 자체를 무서워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살아있는 가족을 난도질해놓고 그걸 장난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합의고 선처고 절대 없습니다. 법대로 끝까지 갈 겁니다. 제가 예민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