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닷가 근처 허름한 모텔 2층 방이에요. 벽지는 곰팡이 냄새가 배어 있고 에어컨은 덜덜거리면서 찬바람만 뿜어대는데, 창문 틈으로 파도 소리만 철썩철썩 들어와요. 옆 침대에는 오빠가 사흘 밤을 꼬박 새더니 겨우 기절하듯 잠들었어요.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앉고 숨소리도 가쁜데도 제 손은 꼭 쥐고 있네요. 학교 단톡방 난리라면서요? 학생회비 5천만 원 들고 튀었다고. 근데 그거 제가 먼저 쓰자고 꼬신 거 아니에요. 오빠가 통장 관리하는 입장이니까 한두 달만 돌려막기 하면 티도 안 난다고 먼저 꺼낸 말이에요. 그 돈으로 간 오마카세, 제 생일에 들어온 명품백, 호캉스 스위트룸까지... 저도 그게 학생들 돈인 거 알았죠. 근데 그때는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줄 진짜 몰랐다고요.
솔직히 학교 다니면서 한 번쯤은 욕심 안 내봤나요? 우리는 그냥 조금 더 용감했던 것뿐인데 결과가 이 도망자 신세예요. 사람들은 왜 우리를 악마 보듯 하죠? 오빠는 학생회장 선거 때부터 공약 지키려고 진짜 열심히 뛰었어요. 근데 학교는 지원 하나 제대로 안 해주고 학생들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잖아요. 오빠가 느꼈을 배신감 생각하면 저라도 그 돈 쥐고 떠나고 싶었을 거예요. 우린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시작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죄인가요?
댓글 보니까 신상 털었다는 분도 있고 신고했다는 분도 있던데 하라고 하세요. 어차피 우린 이 돈 다 쓰기 전까진 안 나타날 거고 세상이 아무리 욕해도 저희는 서로뿐이에요. 오빠가 자면서도 제 손을 꼭 잡고 있네요. 이게 진짜 사랑 아닌가요? 법이니 도덕이니 하는 건조한 잣대보다 훨씬 뜨겁고 위대한 거요.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 자기 인생 전체를 걸어본 적 있나요? 우린 지옥 끝까지라도 같이 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