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제선에서 5년째 근무 중인 승무원입니다. 며칠 전 비행에서 겪은 일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회사에서도 제 편은커녕 고객님 말씀만 되풀이하니 너무 억울해서 여기에라도 털어놓습니다. 밤새 뒤척이다가 손 떨려서 글 씁니다.
일은 며칠 전 비즈니스석에서 터졌습니다. 탑승객 중에 평소에 당당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유명한 여배우 L씨가 있었어요. 처음엔 연예인이라 괜히 더 신경 써서 잘 모셔야겠다 싶었습니다. 식사 서비스 끝나고 L씨가 라면을 주문하셔서 갤리에서 매뉴얼대로 물 온도, 시간 맞춰 끓여 트레이에 받쳐 정석대로 서빙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지나 L씨가 접이식 테이블 위에 태블릿을 올려놓고 만지다가 팔꿈치로 그릇을 툭 치는 바람에 뜨거운 국물이 그대로 무릎이랑 발밑 카펫에 쏟아졌습니다. 뒤쪽 갤리에서 소리 듣자마자 핫타월이랑 마른 수건 두 장 챙겨서 좁은 통로를 거의 뛰다시피 달려갔고, 쏟는 소리부터 제가 도착할 때까지 5초도 안 걸렸습니다.
도착하자마자 L씨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금 이게 안 보여요? 뜨거운 걸 뒤집어썼는데 왜 그렇게 멍하게 있어요?' 하면서요. 당황해서 죄송하다며 닦아내려는데 제 손등을 탁 치더니 '됐고 이름이 뭐예요? 매뉴얼에 승객이 쏟기 전에 미리 주의 주게 돼 있고 바로 대응하게 돼 있지 않냐고요. 당신 그 굼뜬 태도 때문에 내가 지금 데인 것 같고 심장이 벌렁거린다'며 옆자리 승객들까지 다 돌아보게 고함을 쳤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사무장까지 호출하더니 '이 승무원 때문에 비행 자체가 트라우마가 됐다. 매뉴얼대로 민첩하게 대처 안 한 거 공식으로 항의하겠다'며 목소리를 더 키웠습니다. 본인이 쏟은 라면인데 제가 늦게 온 탓에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는 논리였습니다. 내리는 순간까지 제 명찰을 뚫어져라 보면서 이름을 적고 '내 트라우마 책임져라'고 쏘아붙이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지금은 L씨 소속사에서 제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배우 건강과 심리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며 보도자료까지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회사는 고객 만족이 최우선이라며 경위서 쓰고 자숙하라는 말만 합니다. 매뉴얼이 대체 언제부터 자기 잘못 덮는 갑질 방패가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