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학병원에서 3교대 뛰고 있는 31살 간호사입니다. 결혼할 때 남편이랑 딱 하나 약속했어요. 각자 버는 돈 전부 공동통장에 합치고 생활비랑 적금은 같이 관리하자고요. 은행원인 남편이 숫자 다루는 건 자기가 낫다며 가계부 앱이랑 엑셀까지 직접 만들더라고요. 저는 밤샘 근무에 치여 사느라 그냥 믿고 맡겼습니다.
며칠 전 저녁이었어요. 남편이 잠깐 베란다에 나간 사이 식탁 위에 둔 핸드폰에서 은행 알림이 두 번 연속으로 울렸습니다. 무심코 봤는데 저희 공동 적금 계좌에서 출금됐다는 문자였어요. 들어가 보니 시어머니 명의로 250만원씩 두 번, 합계 500만원이 깔끔하게 빠져나간 내역이 찍혀 있더군요. 비상금 통장도 아니고 제가 야근 수당까지 꼬박꼬박 넣던 그 통장에서요.
심장이 쿵쾅거렸는데 일단 애써 눌렀습니다. 급한 집수리 같은 이유가 있겠지, 나중에 말해주겠지 싶어서요.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 친정엄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박서방이 선물 보내줘서 고맙다, 잘 받았다 하시는 거예요. 저는 남편이 제 눈치 보느라 몰래 친정까지 챙겼나 보다 하고 순간 울컥하기까지 했습니다.
다음날 친정에 들러 그 선물을 직접 봤는데 손이 떨리더군요. 부엌 식탁 위에 놓인 건 고급 한우가 아니라 먼지가 뽀얗게 앉은 캔햄 세트 한 박스였습니다. 박스 모서리는 눌리고 테이프는 누렇게 변색됐고요. 옆면 유통기한을 보니 1년 2개월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걸도 모르시고 사위가 준 귀한 거라며 저녁에 찌개 끓이겠다고 냄비까지 꺼내 놓으셨더라고요.
집에 돌아와 남편을 붙잡고 따졌습니다. 처음엔 모르쇠로 잡아떼더니 제가 이체 내역이랑 박스 사진을 들이밀자 그제야 털어놓더군요. 엄마 집 보일러랑 장판 교체해야 해서 급하게 보낸 거고, 처가 선물은 회사 창고에 오래 있던 거 박스는 멀쩡하길래 보낸 거다, 캔은 유통기한 좀 지나도 안 상한다면서 오히려 제가 예민하고 속 좁다고 몰아세웠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남의 돈 1원까지 따지는 사람이 제 돈 섞인 공동자금 500만원은 시댁에 칼같이 쏘면서, 제 부모님께는 버려야 할 재고를 쓰레기 버리듯 보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밤새 링거 꽂고 뛰어 번 돈은 시댁 수리비로 나가고, 우리 엄마 아빠는 상한 햄을 받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계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이 사람이 정말 제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