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라고 해봐야 명절도 아닌데 아침부터 사람 잡네요. 새벽같이 시장 바닥 쓸고 무거운 비닐봉지 양손에 찢어지게 들고 왔는데, 시어머니가 ‘요즘 다 반찬가게에서 맞춰온다 편하게 하자’ 하시길래 제가 펄쩍 뛰며 말렸거든요. 조상님 상에 기성품 올리면 정성이 어디 가냐고 제가 하면 된다고 큰소리쳤죠. 근데 지금 주방 꼴 보니까 그때 왜 입을 놀렸나 후회로 눈앞이 흐릿해지네요.
시댁 주방 타일 바닥에 쪼그려 앉아 가스불 앞에서 전 뒤집은 지 세 시간째예요. 머리는 온통 기름 냄새에 절었고 앞치마는 계란물 튀고 고추물 들어 얼룩투성이, 손등은 기름 튀어 빨갛게 부풀어 올랐어요. 남편은 ‘형이랑 술 사러 잠깐 다녀온다’ 하고 신발 끌고 나간 지 한참이고 시어머니는 거실 소파에서 손녀 안고 티비 보시고. 결국 이 좁은 주방에 갇힌 건 저 혼자예요.
허리 끊어질 것 같아 잠깐 일어서 허리 두드리다 무심코 폰을 켰는데 인스타 알림이 떠 있더라고요. 눌러보니 30분 전에 형님이 올린 사진이 딱 뜹니다. 햇살 쏟아지는 통창 카페에 앉아 턱 괴고 세상 해맑게 셀카 찍은 사진. 뽀샤시 필터에 입술은 뭐 바른 건지 반짝반짝, 캡션은 ‘오랜만에 힐링 타임☕️ 소소한 행복이 최고’라고 써놨더라고요. 기름 냄새 진동하는 제 코앞이랑 너무 비교돼서 순간 숨이 턱 막혔어요.
오늘 아침 전 부치기 전에 제가 형님한테 카톡으로 ‘형님 오늘 제사 음식 같이 준비해요!’ 하고 보냈거든요. 답장이 ‘아이고 동서~ 오늘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아요^^ 수고해요~’였어요. 그 급한 일이 이거였냐고요. 카페 가서 사진 찍고 힐링 타령할 시간은 있고 시댁 제사상 차릴 시간은 없다는 게 말이 돼요? 저는 기름 바다에서 허우적대는데 형님은 우아하게 라떼 홀짝이며 여유 부리는 꼴이 도저히 안 믿깁니다.
열 받아서 시어머니께 슬쩍 ‘어머니 형님 카페 가셨나 봐요’ 하고 보여드렸더니 어머니는 그냥 허허 웃으면서 ‘형님 원래 바쁜 애야,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뭘’ 하시더라고요. 제가 잘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도리 때문에 억지로 하는 건데 왜 저만 집안 하녀 취급이에요? 형님은 친정 잘 산다고 명절 때도 돈 봉투로 퉁치고 빠지더니 이번 제사도 똑같이 저만 바보 만들고 있어요.
진짜 지금 뒤집던 전 다 엎어버리고 주방 박차고 나가고 싶어요. 근데 그러면 또 제가 예민하고 속 좁은 동서 되겠죠. 남편한테 형님 사진 보여주며 따졌더니 ‘에이 형님도 스트레스 풀러 간 거겠지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하더라고요. 피가 거꾸로 솟더라니까요. 제가 진짜 유난 떠는 건가요 아니면 형님이 선을 넘은 건가요?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 같아서 여기라도 토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