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금 너무 당황해서 키보드가 제대로 안 눌립니다. 그냥 삼키고 넘어가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털어놓습니다.
그 인간이랑은 2년 만났고 어제 양가 상견례까지 끝낸 사이입니다. 소위 엄친아 그 자체였어요. 명문대 출신에 중견기업 다니고 키 크고 얼굴까지 준수해서 저희 부모님은 첫 만남부터 입이 귀에 걸리셨죠. 어제 상견례 자리에서도 제 부모님께 살갑게 굴고 제 남동생 입시 고민까지 다정하게 들어주는 완벽한 예비 사위였습니다. 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 아침 9시쯤이었어요. 저희 집 거실 소파에 그 인간이 태블릿을 던져두고 화장실에 간 사이 알림이 미친 듯이 울리더라고요. 평소 남의 기기 절대 안 보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해서 화면을 켰습니다. 잠금도 안 걸려 있었고, 바탕화면 구석 폴더 안에 블로그 앱 하나가 켜진 채로 있었습니다. 제 남자친구 이름이 아닌 생전 처음 보는 닉네임으로 쓴 일기 같은 글이 수백 개가 쌓여 있더군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최신 글부터 눌렀습니다. 제목이 ‘사회 복귀 2주년, 이제 완벽 세탁 완료’였습니다. 내용은 평생 잊지 못할 것들뿐이었어요. ‘군대 얘기 나올 때마다 식은땀 났는데 안에서 배운 연기로 대충 둘러댔다’, ‘여자 쪽 집안이 꽤 빵빵해서 이번 결혼만 성사되면 내 인생 2막은 탄탄대로다’, ‘안에 있는 동기들아, 내가 먼저 간다 부러워하지 마라’ 이런 자화자찬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더 밑으로 내리니 더 노골적인 ‘출소 후기’가 있었습니다. 무슨 죄로 들어갔는지는 교묘하게 가려놨지만 ‘그때 그놈 합의금만 안 뜯겼어도 바로 나왔을 텐데’ 같은 거친 말투에 욕설이 가득했고, 제가 알던 그 다정한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안에서 대장 노릇 하면서 아랫사람들 어떻게 잡았는지 무용담처럼 써놓은 대목을 보는 순간 속이 뒤집혀서 구역질이 올라왔습니다.
그 인간이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헤헤 웃으며 "자기야 왜 그래? 어디 아파?" 하는데 그 가식적인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 비명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습니다. 일단 속이 안 좋다고 둘러대고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는데, 부모님은 아직도 ‘사위 잘 뒀다’며 예식장 날짜 잡자고 난리십니다. 웨딩홀 예약금에 그 인간에게 선물한 시계 값만 해도 제 몇 달 치 월급인데, 지금 파혼하자고 하면 본색 드러내서 저나 제 가족에게 해코지할까 봐 너무 무섭습니다. 제발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