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상견례 자리에서 제대로 망신 당하고 와서 밤새 눈 한 번 못 붙이고 글 씁니다.
예비 신랑은 대기업 과장이고 저는 증권사 백오피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연봉은 제가 천오백 정도 적지만 그래도 전문직 못지않게 자부심 가지고 일해왔고, 부모님 두 분 다 교직에서 정년하신 분들이라 예의범절 하나는 엄하게 배우고 자랐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한정식집 룸 안 원형 테이블에 양가 마주 앉아서 덕담 오가고 코스 나오기 전까지 분위기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죽이 나오자마자 예비 시아버지가 태도가 돌변하더니 대놓고 제 신상털기를 시작하시더군요.
뜬금없이 연봉 얼마냐고 묻길래 정중하게 말씀드렸더니 혀를 쯧쯧 차시면서 우리 아들 버는 거에 비하면 너무 적지 않냐고 면박을 주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제가 메고 간 가방이랑 입고 간 옷 보면서 저런 명품은 다 누가 사준 거냐, 우리 아들 돈 보고 접근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비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모님 얼굴은 굳어 들어가고 저도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비었다, 내 아들이 아까워서 그러니 지금 당장 핸드폰 켜서 통장 잔고 까서 보여줘라, 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결혼 승낙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시더군요.
귀를 의심했습니다. 룸 안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는데 양가 부모님 다 듣는 앞에서 통장을 까라니요. 너무 모욕적이라 옆에 앉은 남친을 쳐다봤는데 이 사람은 제 눈도 안 마주치고 고개만 푹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더군요. 그 순간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더는 못 참겠어서 아버님, 결혼이 무슨 거래도 아니고 이런 취급 받으면서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말한 뒤 부모님 팔 잡고 바로 일어났습니다. 뒤에서 예비 시아버지가 뭐라고 고함을 지르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룸 문 닫고 나왔습니다.
그 뒤로 남친한테 연락이 미친 듯이 오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우리 아빠 원래 그런 분인 거 알지 않냐, 그 자리에서 좀 참아주지 그랬냐며 오히려 저를 탓하네요. 제가 예민한 건가요? 이런 대우 받으면서 결혼을 밀고 가는 게 맞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