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금 손이 덜덜 떨려서 오타가 좀 있어도 양해 부탁드려요 솔직히 제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저는 3년 사귄 남자친구랑 결혼 얘기 오가다 오늘 드디어 상견례를 했어요 남자친구 집이 막 재벌은 아닌데 아버님이 중견기업 임원 지내시다 퇴직 후 고문으로 계시는 꽤 잘 사는 집안이거든요 저도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면서 외모 관리 진짜 열심히 하고 오늘은 시부모님께 점수 따려고 일부러 제일 수수하고 단정한 원피스까지 새로 맞춰 입고 나갔습니다
장소는 예약한 한정식집 별채 룸이었어요 저희가 먼저 들어가서 좌식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곧 예비 시어머님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라고요 한복 느낌 나는 블라우스에 진주 귀걸이 하신 게 딱 기품 있어 보이는데 제가 먼저 일어나서 밝게 인사드렸죠 어머님도 저 보시더니 어머 아들이 눈이 높네 하면서 칭찬해 주셔서 속으로 휴 다행이다 했어요
그런데 5분쯤 지나 아버님이 들어오시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아버님이 룸 문을 열고 들어오시다가 저랑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인자해 보이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리시더라고요 완전 귀신 본 사람 표정으로 입 벌리고 한참을 저만 뚫어져라 보시는데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아버지 왜 그러세요 인사도 안 하시고요 라고 해도 아무 대답이 없으셨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아버님이 헉 허억 거리면서 가슴을 움켜쥐시더니 뒤로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서시더라고요 어머님이 놀라서 여보 왜 그래 하고 다가가려 하니까 아버님이 거의 비명 지르듯이 오지 마 저게 왜 여기 있어 라고 고함을 치시더니 신발도 한짝은 벗겨진 채로 복도 바닥 쿵쿵 울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뛰쳐나가셨습니다
남자친구는 아버지 잡으러 바로 뒤따라 뛰어나갔고 어머님은 넋 나간 얼굴로 저만 멍하니 보고 계시는데 저는 그 순간 바로 알아챘습니다 그 공포에 질린 눈빛 5년 전 제가 제일 힘들 때 제일 비싼 양주 시키면서 저만 찾던 그 단골 손님 눈빛이랑 똑같았거든요 저를 수정아 수정아 부르면서 끈적한 농담 던지던 그 민머리 영감이 지금 제 예비 시아버지 얼굴로 제 앞에 다시 나타난 겁니다
그날 상견례는 그대로 엎어졌습니다. 아버님은 그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전부 끊으신 채 지인 별장에 머무르고 계시다고 하더라고요. 남자친구는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공황 증세를 겪는 것 같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울먹이며 사과하는데, 저는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저를 노골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하셨어요. 아버님이 뛰쳐나가기 직전에 외친 말이 너무 수상하다며, 혹시 예전에 아는 사이였냐고 계속 캐묻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처음 뵙는 분이라고 하며 너무 놀라 무서웠다고 눈물로 버티고 있습니다.
진짜 두려운 건 따로 있어요. 예전에 일하던 시절 혹시 몰라 보관해 둔 기록과 사진들 중에 아버님이 술에 취해 제게 끈적한 제안을 하며 다가오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개인 클라우드에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아버님도 저를 정확히 알아보셨기에 그토록 놀라 도망치신 거겠죠.
남자친구는 끝까지 결혼을 밀고 나가자며 아버지를 설득하겠다고 합니다. 이제 저는 갈림길에 섰어요. 이대로 파혼당하고 과거가 드러날지, 아니면 아버님을 따로 만나 그 영상을 보여드리며 대화를 통해 결혼을 관철할지 고민 중입니다. 시아버지가 될 분이 예전 단골이었다니, 이런 드라마 같은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절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