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무 경황이 없어서 오타가 나도 좀 봐주세요. 진짜 눈앞이 캄캄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에요.
엄마는 제가 어릴 때 떠나시고 아빠랑 단둘이 친구처럼 의지하며 살았어요. 아빠가 평생 재혼 안 한다더니 얼마 전 진지하게 만나는 분이 생겼다며 결혼까지 생각 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아빠 혼자 늙어가는 게 걱정도 되고 해서 저도 쿨하게 축하해주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어제가 그분을 처음 인사드리는 자리였어요.
약속한 일식집 룸에 아빠가 먼저 앉아 계셨고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그분이 들어오는데 머릿속이 하얘지고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너무 익숙한 얼굴이었어요.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고등학교 3년 내내 저를 지옥으로 몰아넣던 일진 언니 김○라였어요. 한 살 위였는데 복도에서 제 발등에 담뱃불을 갖다 대고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끌고 가 온갖 모욕을 하던 애요. 그때 남은 흉터 때문에 아직도 한여름에 반바지 한 번을 못 입어요.
근데 그 언니가 아빠 바로 옆자리에 앉아 저를 보며 세상 다정한 척 웃는 거예요.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딸, 앞으로 네 새엄마 될 분이야’라며 소개하는데 속이 뒤집혀 토할 것 같더라고요. 아빠가 잠깐 화장실 간 틈에 제 쪽으로 바짝 붙더니 귓속말로 이러는 거예요. ‘예○아, 세상 진짜 좁지? 그때처럼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 모두 편하게 살 수 있어. 아빠 행복 망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알겠지?’
아빠 앞에선 세상 현숙한 여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테이블 밑에선 저한테 눈으로 칼을 꽂는데 미치겠어요. 저런 사람이 제 새엄마로 들어온다니 소름이 다 끼쳐요. 아빠는 그 여자가 과거에 저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꿈에도 몰라요. 지금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그때 공포가 그대로 올라와 숨쉬기가 버거워요. 저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을 올리고 여러 조언을 듣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붙잡았습니다. 제가 떨고 있는 사이 그 김○라라는 여자는 이미 아빠 집 안방을 차지할 생각으로 짐까지 옮길 궁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어젯밤 아빠 몰래 제 방에 들어온 그 여자가 제가 아끼던 고교 시절 일기장을 찢어 던지며 비웃는 모습을 보고 더는 물러설 수 없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괴롭힘으로 발급받은 진단서와 보건실 기록, 졸업앨범 뒷장에 그 여자가 남긴 조롱 섞인 낙서까지 모두 사진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빠 모르게 설치해둔 거실 CCTV에 그 여자가 저를 협박하던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아빠에게 전부 털어놓자 처음엔 믿지 못하시더니 녹취를 듣고 제 발등 흉터를 직접 확인하시곤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아빠는 바로 그 여자에게 연락해 파혼을 통보했고, 그 여자는 본색을 드러내며 끝까지 가만두지 않겠다고 악을 썼지만 저는 법률구조공단에 상담을 받아 접근금지 가처분과 정식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제야 10년 넘게 나를 가두던 감옥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