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무 당황해서 키보드가 제대로 안 눌려요. 여기 지도에도 잘 안 나오는 깊은 산골 펜션인데 낮부터 미친 듯이 폭설이 쏟아져서 진입로가 통째로 막혀 고립됐어요. 차는 이미 눈에 파묻혔고 관리동에 계신다는 사장님은 전화하면 두 번 중 한 번은 뚝 끊기고, 방 안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밖에 안 들려서 너무 무서워요.
그런데 십 분쯤 전에 바로 옆방 벽 너머에서 여자 비명이 찢어지듯이 들렸어요. 그냥 놀라서 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목이 터져라 누군가에게 붙잡힌 것처럼 길게 끌던 비명이었어요. 비명 뒤에 쿵 하고 가구 같은 무거운 게 넘어지는 소리, 뭔가를 질질 끄는 소리까지 나더니 지금은 일부러 입을 막은 것처럼 조용해졌어요.
이상한 건 아까 해 질 무렵 주차장에서 검은색 대형 세단이 눈보라를 뚫고 들어오는 걸 제가 직접 봤다는 거예요.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조수석 여자 팔을 거의 끌어내리듯이 잡고 옆방으로 들어갔는데, 여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고개도 못 들고 끌려가더라고요. 근데 체크인할 때 사장님이 오늘 손님은 저 하나뿐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대체 뭐죠?
그리고 지금 제 방문 바로 앞에서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계속 들려요. 오래된 원목 마루가 끼익 끼익 울리는데 천천히 제 문 앞까지 와서 3~4초 멈췄다가 다시 멀어지고 또 돌아와요. 경찰에 전화해도 정확한 주소를 설명할 수가 없고, 밖은 눈이 허벅지까지 차서 도망갈 수도 없어요. 문 잠그고 벽에 귀 대고 있는데 어떡해야 할까요, 제발 알려주세요.
그날로부터 45일이 흘렀습니다. 경찰이 폭설을 뚫고 펜션에 도착했을 때 옆방은 이미 비어 있었고 사장은 끝까지 그날 예약 손님은 저뿐이었다고 발뺌했습니다. 하지만 제 방문 손잡이에 남은 낯선 지문과 복도 바닥에 떨어져 있던 피가 묻은 귀걸이 한 짝이 제 말이 꾸며낸 게 아니라는 걸 입증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펜션을 빠져나왔고 현재는 그날의 정황을 토대로 사장과 검은 세단의 남성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 중입니다.
미처 밝히지 못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날 복도에서 여성을 끌고 가던 선글라스 남성은 예전 제가 다니던 디자인 스튜디오의 대표였습니다. 저를 집착하는 사람으로 몰아 업계에서 밀어내려 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옆방에 있던 여성이 누구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벽 너머로 들린 비명과 넘어지는 소리, 끌려가는 흔적은 폭력이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더는 숨지 않기로 했고 당시 녹음해 둔 파일 전부를 변호사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동안 커뮤니티에서 주작이라며 몰아세우고 성지순례라며 조롱 댓글을 남기신 분들 전부 PDF로 저장해 두었습니다. 특히 지인인 척하며 허위 사실을 퍼뜨린 분은 이미 특정이 끝났으니 조만간 경찰서에서 만나게 될 겁니다. 인생은 실전이고 남의 공포를 구경거리로 소비한 대가는 치르게 될 겁니다. 저는 곧 새로운 도시로 거처를 옮겨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날 밤의 공포는 오히려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