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무 당황스럽고 정신이 없어서 키보드 오타 나면 이해 좀 해주세요.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여기에라도 토해냅니다. 내가 진짜 옹졸한 건지, 아니면 얘네가 선을 넘은 건지 솔직하게 좀 판단해주세요.
평소에 게임에 진심이라 2년 넘게 매일 밤 레이드 같이 뛰고 디스코드에서 살다시피 한 길드원들이 있어요. 이번에 대형 업데이트 기념으로 지방에서 찔끔 모이지 말고 다 같이 한 번 제대로 정모하자고 얘기가 나왔죠. 다들 직장인이라 어차피 모이는 거면 숙소 좋은 데 잡고 제대로 놀자는 분위기였습니다.
단톡방에서 숙소 얘기 나오는데 평소에 호감 있던 길드원 린아님이 온다고 하길래 제가 정신줄 놓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숙소는 신경 쓰지 마, 오빠가 이번에 법인카드로 깔끔하게 쏜다' 이렇게 던져버린 거예요. 당연히 법카 아니고 제 개인카드인데, 그 순간만큼은 린아님 앞에서 폼 좀 잡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심 한복판 호텔 스위트룸 잡고 프론트에서 제 카드로 250만원을 그냥 긁어버렸습니다. 체크인하자마자 애들 반응은 폭발이었죠. '형 미쳤다' '역시 형이 통이 크다' 추켜세우는데 어깨가 하늘로 솟더라고요. 근데 짐 풀고 소파에 앉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애들이 룸서비스로 양주에 치즈플래터, 과일까지 종류별로 미친 듯이 시켜대고, 저는 린아님 옆자리 앉아서 말 한마디 해보려는데 길드장이랑 애들이 린아님 둘러싸고 술게임 시작하면서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더라고요.
결국 밤새 스위트룸 한구석 쇼파에 처박혀서 식은 안주나 집어먹으면서, 내 카드로 결제한 방에서 남녀 애들이 껴안고 낄낄대는 꼴을 병풍처럼 구경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들 숙취로 헤롱대길래 단톡에 눈치 보면서 올렸죠. '어제 총액이 좀 세게 나왔는데, 방값은 내가 쏘는 걸로 하고 식대랑 술값은 엔빵하자'고요.
답장이 진짜 가관이더군요. '형이 법카로 쏜다며 왜 이제 와서 뒤집냐' '와 쪼잔하다, 법카라며 돈 걷어가냐' 이런 소리만 돌아옵니다. 린아님마저 '오빠 어제는 멋있었는데 오늘은 좀 예민해 보인다'고 하네요. 제 쌩돈 250만원이 증발했는데 고맙다는 한마디는커녕 쪼잔한 놈으로 몰리니까 피가 거꾸로 솟네요. 이게 제가 예민한 겁니까?
그 글 올리고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길드 탈퇴했고 몇 명과는 정산 문제로 계속 다투는 중입니다. 단톡방에서 제가 법인카드라고 했던 말을 물고 늘어지길래 개인 카드 결제 내역 PDF를 뽑아 그대로 올렸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구라 친 건 형인데 왜 우리한테 따지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더군요. 제가 쏜다고 한 건 맞지만 그걸 방패로 모든 걸 덮으려는 태도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더 황당한 건 그날 밤 린아와 길드장이 따로 빠져나가 술을 더 마셨다는 사실을 다른 길드원을 통해 들은 겁니다. 제가 결제한 스위트룸에서 다 같이 놀다가 둘이 눈이 맞아 밖으로 나간 거였습니다. 결제할 때 린아가 옆에서 윙크하며 고맙다고 하던 모습이 전부 연기로 느껴지니까 자다가도 벌떡 깨고 속이 뒤집히더군요. 그 방에서 제가 소파 구석에 처박혀 있을 때 이미 두 사람은 따로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던 겁니다.
카드 대금일은 다가오는데 통장 잔고는 바닥이라 결국 리볼빙을 신청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비싼 250만원짜리 호구 인증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는 형님께 자문을 구해 정산과 관련해 부당이득 반환 청구 가능성은 검토 중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이제 그 사람들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큽니다. 괜히 긁어놓고 뒤늦게 후회해도 대금은 고스란히 제 몫이더군요.
온라인 인연은 정말 믿을 게 못 되더군요. 돈 앞에서는 다들 태도가 달라집니다. 린아는 그 이후 제 연락을 모두 차단했고 길드장과 사귄다는 소문이 들려오더군요. 제가 예약한 스위트룸이 두 사람의 추억 장소가 됐다는 사실이 너무 역겨워 결국 게임도 지워버렸습니다. 다들 저처럼 허세 부리다 호구 짓 하지 마시고 돈 문제는 처음부터 칼같이 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