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개월 차 새댁입니다. 지금 어디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자판부터 잡았습니다.
영끌해서 장만한 신축 아파트, 대출 원리금 갚느라 둘이 맞벌이로 뼈 빠지게 버티는 중입니다. 시댁이 차로 10분 거리라 주말마다 왔다 갔다 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집은 현관 들어서자마자 바로 거실 보이는 구조라 도어락 하나가 집 전체 보안이나 다름없습니다.
엊그제 저녁, 남편이 현관 앞에 서서 도어락 커버 열고 비번을 바꾸더군요. 0XXX, 네 자리 꾹꾹 누르는데 제가 왜 하필 그 번호냐 물으니 외우기 쉽고 복 들어오는 번호라고 둘러대면서 시선은 계속 바닥에만 박혀 있었습니다.
근데 그 숫자 배열이 너무 낯익은 겁니다. 결혼 전 시댁 인사 갔다가 시어머니 서재 정리 도와드린다고 원목 책장 아래 서랍을 열었을 때 본 적 있는 숫자였어요. 서랍이 잠겨 있길래 헤어핀으로 살짝 열어봤더니 안에 낡은 편지 묶음과 일기장이 있었고, 거기 첫 장에 크게 적힌 날짜랑 도어락 번호가 한 글자도 안 틀리고 똑같았습니다.
그 날짜가 시어머니가 평생 마음에 품었다는 첫사랑 그분 생일이었습니다. 바로 남편 멱살 잡고 따졌죠. 누가 정한 번호냐고 소리치니까 처음엔 자기가 골랐다 우기더니, 몰아붙이니까 결국 시어머니가 이 번호로 해놓으면 집안에 화기가 돈다며 직접 추천해줬다고 자백하더군요.
제정신인 시어머니가 아들 신혼집 현관 비번을 자기 옛날 남자 생일로 정해줍니까. 그걸 또 아무렇지 않게 받아 적어오는 남편은 뭐고요. 소름 끼쳐서 캐리어 하나 싸서 바로 친정으로 왔습니다. 남편은 제가 유난 떤다, 숫자 가지고 뭘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냐며 오히려 저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가네요. 저 이 결혼 계속 끌고 가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