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제 겨우 29살, 남들 보기엔 한창 예쁠 나이라는데 저는 매일 밤 제 방 구석에서 숨죽여 울다 지쳐 잠드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이라기보다 그냥 집안 현금 인출기이자 엄마 노후 대비용 보험 신세죠.
전문대 졸업하자마자 중소기업 회계팀에 들어갔어요. 첫 월급 180 찍히던 날, 엄마는 제 손을 덥석 잡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죠. '지**아, 엄마가 너희 키우느라 빚더미에 앉았다. 네 돈 엄마가 잘 굴려서 결혼할 때 집 할 때 두 배로 돌려줄게. 믿고 맡겨라.' 그 눈물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게 지옥행 직행 티켓인 줄도 모르고요.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대리 달고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해서 280을 찍어도 제 손에 떨어지는 건 교통비 20이 전부였어요. 친구들이 제주도 가고 호캉스 간다 할 때 저는 탕비실 믹스커피 타 마시며 버텼죠. 가끔 퇴근길에 혼자 칵테일 한 잔으로 풀던 스트레스가 유일한 사치였는데 그것조차 엄마 눈치 보여 숨겼습니다. 그래도 내 통장에 쌓일 미래를 믿고 버텼는데, 엊그제 거실 식탁에 널브러진 엄마 통장을 잘못 봤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적금은커녕 잔액이 73,420원 찍혀 있더군요.
머리가 하얘져서 엄마한테 따졌죠. '엄마, 내가 5년간 보낸 돈 다 어디 갔어?' 돌아온 건 사과가 아니라 고래고래 고함이었어요. '너 미쳤니? 그 돈 다 네 동생 민석이 뒤치다꺼리하고 생활비로 쓴 거지! 민석이가 주식이니 코인이니 하다가 빚 좀 졌는데 애 인생 망하게 둘 수 없어서 갚아준 게 그렇게 아깝냐?' 동생 놈은 자기 방에서 배달 치킨 뜯으면서 문 닫고 모른 척했고요.
그것도 모자라 엄마는 제 침대 밑 서랍 깊숙이 숨겨둔 비상금 통장 50만원짜리를 뒤져서 꺼내 바닥에 내던지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진짜 비수가 꽂히더라고요. '너는 어쩜 네 것만 챙길 줄 아니? 나는 이제 허리도 아프고 늙었는데 내 노후는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너만 살겠다고 몰래 돈을 빼돌려? 야 이년아,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네가 딱 그 짝이다!'
그때 핏대 세워 소리 지르던 얼굴이 엄마가 아니라 완전 다른 사람 같아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지금도 거실에선 엄마랑 동생이 고기 구워 먹으며 깔깔대는데, 저는 텅 빈 통장 하나 쥐고 작은 방 창밖만 멍하니 보고 있어요. 저 여기서 그냥 짐 싸서 나가버리면 이 지옥이 끝나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