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 쓰는 손끝이 미친 듯이 떨려서 오타도 제대로 못 고치겠어요. 가슴 한가운데 얼음 조각이 박힌 것처럼 서늘하고요. 저는 겉보기엔 번듯한 중견기업 회장님 수행비서지만 현실은 카드 리볼빙 돌려막기에 어머니 요양비에 허덕이는 고시원 사는 27살이에요. 하루하루를 그냥 헐값에 팔아 넘기는 기분이었죠.
오늘 오후 2시 반쯤 회장님이 급한 외부 일정 때문에 집무실을 비우셨어요. L자 구조 집무실에 통유리 너머 복도가 훤히 보이는 그 책상, 그 중에서도 평소 절대 열지 말라던 맨 아래 이중 잠금 서랍 있잖아요. 경쟁사 쪽에서 은밀한 내부 자료만 가져오면 두둑이 챙겨주겠다는 말에 눈이 뒤집혀서, 제가 그걸 열고 말았어요. 손이 덜덜 떨리는데도 서류 더미를 헤집는데 맨 안쪽 비밀 칸에 사진 한 장이 덩그러니 끼어 있더라고요.
그걸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어요.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애가 제 10년 전 단짝 수지(가명)였거든요. 졸업식 한 달 앞두고 감쪽같이 연락이 끊겨 지금까지 행방불명인 애예요. 제가 생일 때 직접 찍어준 사진이었고 뒷면에 제 악필로 삐뚤빼뚤 쓴 ‘우리 영원하자’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절대 잊을 수가 없는 제 글씨였어요.
근데 그 사진이 왜 회장님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있죠? 수지가 사라지던 그해 회장님은 이 일대에서 재개발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때였고, 수지네 집이 그 반대 모임 한가운데였어요. 너무 놀라서 일단 사진을 가방 안쪽 지퍼에 구겨 넣었는데, 그때 집무실 안쪽 복도에서 묵직한 구두 소리랑 회장님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바로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지금 저는 서재 구석 책장 뒤쪽 좁은 틈에 몸을 구겨 넣고 화면 밝기 최소로 해서 이 글 쓰고 있어요. 가방 안에 그 사진 그대로 있는데 회장님이 제 가방을 열어보면 어떡하죠? 제가 여기 숨어 있는 걸 알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10년 전 수지도 저처럼 이런 공포에 질려 있었을까요? 밖에서 회장님이 천천히 복도를 돌며 “비서 어딨어?” 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제발 누가 좀 알려주세요, 어떻게 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