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애들은 죄다 호텔 스위트룸에 영화관 통대관 빌려서 다이아 반지 끼워주는 프로포즈 영상 올리는데 나만 조용히 넘어갈 것 같아서 예비 남편한테 몇 달을 귀에 딱지 앉도록 노래를 불렀어요. 사랑하면 그 정도는 해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게 정성이지 않냐고요. 그러다 어제 저녁에 남친이 목소리 바들바들 떨면서 강남 쪽 대형 영화관으로 당장 오라고 하더라고요.
막상 가보니까 진짜 제가 인스타에 저장만 해두던 그 장면 그대로더라고요. 불 꺼진 상영관 스크린 가득 우리 연애 사진 슬라이드가 넘어가고, 맨 앞 무대에 남친이 빨간 장미 꽃다발 들고 서 있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아, 이 사람이 그래도 날 위해 무리했구나 싶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했죠. 대관료가 30은 우습게 넘는다던데 몰래 편의점 야간이라도 뛰었나 싶어 대견하기까지 했어요.
꽃다발 받고 직원분이 준비해준 케이크 커팅까지 끝내고 제가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고 크로스백을 의자에 둔 채 남친한테 맡겼거든요. 상영관 바로 옆 여자화장실 세면대에서 손 씻고 있는데 핸드폰이 부르르 울리더라고요. [○○카드 300,000원 결제완료 영화관 대관료] 딱 이렇게 찍혀 있는 거예요. 순간 머리가 띵 했어요. 이게 왜 내 카드로 긁히지? 손에 물 뚝뚝 떨어지는 채로 뛰어나갔죠.
남친 붙잡고 이게 뭐냐고, 왜 내 카드를 마음대로 긁었냐고 따지니까 표정이 더 가관이더라고요. 자기야 어차피 결혼하면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인데 지금 내 통장에 잔고가 좀 부족해서 잠깐 빌려 쓴 거야. 프로포즈는 분위기가 중요한 거잖아? 네가 그렇게 원하던 거 해줬으면 됐지 30만원 가지고 이 감동적인 순간을 망쳐야겠어? 라는데 정이 뚝 떨어지는 걸 넘어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가 화장실 간 3분 사이에 제 가방 지퍼 열고 지갑에서 카드 꺼내 카운터 직원한테 긁으라고 줬다네요. 직원은 당연히 본인 카드인 줄 알았겠죠. 30만원이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내 허락도 없이 가방에 손을 넣어 카드를 훔쳐놓고 생색은 혼자 다 냈다는 게 너무 충격이에요. 이거 그냥 절도 아닌가요? 남친은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는데 제가 이상한 건가요? 이런 사람이랑 결혼해도 될지 아침부터 손이 덜덜 떨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