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금 모 대학에서 학과 총무를 맡고 있는 21살입니다. 원래 부탁 거절도 못하고 시키면 그냥 묵묵히 하는 성격이라 이번 축제 정산만큼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하려고 과방 책상에 엑셀 켜놓고 밤새 영수증이랑 카드 내역을 한 줄씩 대조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합계를 맞추는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몇백만 원이 비어 있더라고요.
축제 내내 과대 오빠는 정말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오전엔 무대 업체 미팅 간다며 나가고 오후엔 물품 가지러 창고 간다며 사라지고, 저는 부스에서 떡볶이 뒤집느라 정신없어서 그냥 고생하는구나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카드 내역을 뽑아보니 제가 결제한 적도 없는 ‘운영지원비’ ‘현장보조비’ 같은 명목으로 시내 백화점에서 수백만 원이 여러 건 결제돼 있었습니다. 학교 앞 문구점도 아니고 왜 백화점에서요.
가슴이 쿵쾅거려 손이 떨렸지만 확실한 걸 잡으려고 과대 오빠가 제출한 영수증 봉투를 바닥에 쏟아 하나하나 다시 뒤졌습니다. 식자재 마트 영수증 사이에 끼어 있던 게 기프트카드 충전 영수증과 명품 가방 구매 전표였습니다. 결제 시각은 축제 둘째 날 오후 2시 7분, 정확히 과대 오빠가 “재료 떨어져서 급하게 마트 다녀온다”며 공금 카드를 챙겨 과방 문을 열고 나가던 그 시각이었습니다.
더 소름 돋은 건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부계정으로 몰래 팔로우해둔 과대 여친 인스타에 그날 저녁 올라온 릴스였어요. ‘축제 고생한 오빠가 준 깜짝 선물, 평생 간직할게’ 라는 멘트와 함께 제가 전표에서 본 그 가방 리본을 풀어 꺼내는 언박싱 영상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우리 과 애들 3박 4일 동안 하루 네 시간 자면서 기름 튀겨가며 번 피 같은 돈이 결국 한 사람 어깨에 걸린 가방 한 짝으로 바뀐 겁니다. 댓글에 하트랑 부럽다는 말이 달리는 걸 보니 속이 뒤집히더라고요.
오늘 아침 수업 전 과방 뒤편 복도에서 과대 오빠를 따로 불러 영수증을 내밀며 이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사과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 어깨를 잡고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야 너 겨울에 우리 동기들이랑 유럽 가기로 했잖아. 그때 쓸 돈 미리 당겨둔 거야. 너도 알면서 가만 있었으면 너도 같이 엮이는 거야, 입 닫아.” 제가 여행 가고 싶어 하는 걸 약점 잡아 협박하는데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과, 믿었던 선배가 뒤에서 이런 짓을 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이걸 공론화하면 제가 진짜 공범이 되는 걸까요. 너무 무섭고 막막해서 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