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 쓸 일이 제 인생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새벽 내내 부엌 식탁에 앉아 가슴이 쿵쾅거려서 어디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정말 버틸 수가 없네요. 애 키워본 분들은 다 아시잖아요. 내 자식 인생이 통째로 걸린 일인데 부모가 불구덩이라도 뛰어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당연한 부모 마음 아닌가요?
시작은 지난달 중순이었습니다. 졸업을 한 달 앞둔 중3 우리 아들이 같은 반 친구 몇 명과 장난이 좀 지나쳤는데 그게 그대로 학폭 신고로 넘어갔습니다. 상대 아이가 원래 소심하고 예민한 아이라 우리 애들 장난을 너무 크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일주일 뒤 등기로 학폭위 결과가 날아왔는데 생기부에 4호 처분이 그대로 남는다는 겁니다. 코앞에 둔 명문고 진학이 물 건너가는 걸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앞길이 완전히 막힌 기분이었습니다.
남편이랑 저는 교무실이며 교육청이며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돌아오는 답은 매번 같았습니다. 그러다 교육계에 발이 넓다는 지인을 통해 생기부 기록을 감쪽같이 정리해준다는 브로커를 소개받았습니다. 강남역 근처 오피스텔 회의실에서 만난 그 사람은 자신만의 특수 루트가 있어 흔적 없이 지워줄 수 있다며 태연하게 말하더군요. 대신 거액의 수수료는 기본이고 우리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증표로 비밀 처리 보고서라는 걸 자필로 써서 맡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보고서는 사실상 우리가 브로커에게 절대 복종하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진다는 서약서였습니다. 저는 아들 인생 앞에서는 그깟 종이 한 장이 대수냐 싶었습니다. 브로커가 시키는 대로 A4 열 장 분량에 제 과거의 자잘한 과오부터 가족 사생활까지 모조리 적어 내려갔습니다. 예전에 회사에서 경비 처리 편법 썼던 일이랑 담임 선생님께 명절마다 챙겨드렸던 상품권 같은 것들까지 전부요. 그걸 써내면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방패가 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보내고 보고서 원본을 넘긴 지 딱 일주일 만에 브로커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기록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오히려 제가 쓴 보고서 사진을 찍어 보내며 협박을 시작한 겁니다. 거기 적힌 제 자백 한 줄 한 줄이 그대로 제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매달 수백씩 내놓으라고 하고 한 번이라도 거절하면 이 보고서를 경찰과 제 회사 감사실에 그대로 뿌리겠다고 합니다.
아들 하나 살려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이제는 남편 직장이며 제 커리어며 집안 전체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습니다. 어제는 퇴근길에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서 그 브로커랑 딱 마주쳤는데 헤헤 웃으며 인사하는데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풀리더군요. 제발 누가 좀 살려주세요. 저는 부모로서 당연한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몰려야 하나요? 세상이 너무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