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원 다니는 28살 여자입니다. 부모님이 전문직이라 외동딸인 저한테 용돈을 꽤 넉넉하게 주시는 편이고, 솔직히 말하면 브랜드 옷 모으는 게 제 유일한 낙이에요. 한 달에 몇백씩 옷 사는 건 기본이고요. 지금 사는 곳도 부모님이 보안 좋은 곳으로 해주신 학교 앞 오피스텔이에요. 도어록에 현관 CCTV까지 다 있는 곳이라 안심하고 살았죠.
일이 터진 건 지난주 1박2일로 타지 학회 발표 다녀왔을 때예요. 발표 준비로 정신없어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과 후배한테 택배 오면 문 앞에 잠깐만 둬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근데 학회 끝나고 랩실 사람들이랑 술 한잔하는데 제가 취해서 도어록 누르는 걸 그 애가 옆에서 본 모양이에요. 본인은 제가 직접 알려줬다고 우기는데, 저는 기억도 안 나요. 어쨌든 그걸로 들어온 거죠.
집에 돌아오자마자 느낌이 싸했어요. 저는 평소에 쓰는 디퓨저 향 아니면 바로 알아차리는데, 현관 열자마자 제가 절대 안 쓰는 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르더라고요. 가방 던져놓고 바로 드레스룸으로 뛰어가는데 심장이 쿵쾅거리더라고요.
들어가 보니 진짜 눈앞이 하얘졌어요. 제일 아끼는 실크 원피스랑 수백 하는 울 코트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거울 앞에는 파운데이션 가루랑 머리카락이 잔뜩 떨어져 있었어요. 코트 주머니 뒤지니까 먹다 만 젤리 껍질까지 나오는데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누가 봐도 여기서 옷 갈아입고 사진 찍다 간 거였어요.
바로 전화해서 따졌더니 더 어이가 없더라고요. '언니 옷 많잖아요. 저 졸업사진 찍을 옷 없어서 한 번만 입어본 건데 왜 이렇게 쪼졸하게 굴어요? 사진만 찍고 벗어놨어요' 이러는데 완전 적반하장이죠. 소매에는 빨간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있고 실크는 물세탁도 안 되는 소재인데 사과 한마디 없이 저를 예민한 사람 만드는 거예요.
제가 진짜 예민한 건가요? 허락도 없이 남의 집 비번 찍고 들어와서 옷 꺼내 입고 훼손까지 한 건데 이거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요. 당장 신고해야 하는 거 맞죠? 부모님이 알면 난리 날 텐데 그 애는 아직도 단톡방에서 제가 속 좁은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