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정신이 없어서 휴대전화 자판이 겹쳐 보여요. 현관 비밀번호 세 번이나 틀리고 들어와서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겨우 글 쓰고 있어요. 방금 통장 잔고 0원 찍힌 거 보고도 이게 꿈이면 좋겠는데 숫자가 너무 선명해서 현실이네요.
제가 진짜 어리석었어요. 저금리로 갈아타라는 문자 하나 보고 홀린 듯이 시키는 앱 깔고 인증하라는 대로 눌렀다가 천만 원을 그대로 보내버렸어요. 그 돈 원래 다음 달 결혼 앞둔 오빠 카드값 막아주려고 제가 1년 넘게 아등바등 모은 적금 깬 돈이었거든요. 오빠가 요즘 주식 때문에 하루 종일 한숨만 쉬고 너무 힘들어하니까 제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무리하게 대출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은행 철문 내려가는 소리 들으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다가 경찰서 가서 떨리는 손으로 진술서 쓰고 집에 기어들어왔어요. 그래도 오빠라면 와서 괜찮냐고 등이라도 토닥여줄 줄 알았어요. 근데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서 게임하던 오빠가 힐끔 보더니 코웃음을 치더라고요.
야, 진짜 레전드다. 너 뉴스 안 보냐? 아직도 그런 거에 넘어가는 사람이 있냐? 천만 원을 그냥 갖다 바쳤다고? ㅋㅋㅋㅋ 너 진짜 머리 비었냐? 능지 이슈 제대로네.
그러면서 제 얘기를 친구들 단톡에 올리는지 키득거리면서 타닥타닥 치더니 자기들끼리 웃기다고 깔깔대더라고요. 거실 나가면서 제 정수리 툭 치고 지나가면서 또 한마디 했어요. 야, 그 머리로 회사 생활 어떻게 한 거냐? 신기하다 진짜.
저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내일 생활비도 막막해서 손이 떨리는데 제일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비웃을 수가 있나요?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