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 차, 서로 속속들이 다 안다고 자부했는데 오늘 그 자부가 박살 났습니다. 인간에 대한 정이란 게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꺼져버린 기분이에요.
남편 박 과장, 원래 술자리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건 알았죠. 근데 이렇게까지 이중잣대 끝판왕인 줄은 몰랐네요. 어제는 새벽 3시 넘어 현관 비밀번호 찍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는데, 온몸에서 달달한 여자 향수랑 찐한 담배 냄새가 뒤섞여서 코를 찌르더군요. 따지니까 신입 여직원 적응 돕는 회식이었다, 이게 다 비즈니스고 사회생활이랍니다.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죠.
또 싸우기 싫어서 그냥 삼켰습니다. 그런데 오늘 낮 12시 반쯤, 저희 팀 최 팀장님이랑 회사 바로 옆 유리창 큰 파스타집에서 점심 먹으며 다음 주 프로젝트 일정 정리한 걸 톡으로 사진 한 장이랑 같이 보냈거든요. 그때부터 남편이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낮에 회사 유선전화로 전화해오더니 받자마자 '너 제정신이냐'부터 꽥 지르더군요. '남녀가 둘이서 대낮에 파스타 썰고 있으면 그게 데이트지 일이냐'며 사무실 사람들 다 들리게 고함을 질렀어요. 저녁 7시에 칼퇴하고 현관문 열자마자 거실 모서리에 있던 화분을 발로 걷어차 깨부수더니, 저를 벽 구석으로 몰아세워서는 어디서 누구랑 뭘 얘기했는지 취조하듯 캐묻더군요.
남편 논리 들어보세요, 진짜 걸작입니다. '술은 취해서 마시는 거라 기억도 못 하니 실수해도 되지만, 밥은 맨정신에 눈 마주 보고 대화하는 거라 마음이 오가는 진짜 외도'랍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여자들 끼고 새벽까지 술 마시는 건 '의리'고 '업무'고, 제가 남자 상사랑 창가 자리에서 40분 파스타 먹은 건 '정서적 불륜'이라는 거예요.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습니다.
기가 차서 헛웃음 한번 흘렸더니 '남편 말하는데 어디서 비웃냐'며 제 폰을 낚아채 거실 바닥에 집어던지더군요. 액정 나갔는지 화면이 깜빡거립니다. 지금 안방 문 잠그고 노트북 켜서 글 쓰는데, 밖에서 문을 발로 차대며 당장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어요. 손이 덜덜 떨립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도 최 팀장님한테 마음이 살짝 흔들린 건 맞습니다. 남편이 술 냄새 풍기며 들어와 저를 투명인간 취급할 때마다, 팀장님이 건네주던 따뜻한 커피 한 잔이랑 '대리님 오늘 일 잘했어요' 그 한마디가 그렇게 위로가 되더군요. 근데 오늘 남편 저 광기 서린 눈빛 보니까 오히려 정이 뚝 떨어지네요. 제가 예민한 건가요, 아니면 이 남자가 정상이 아닌 건가요. 판단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