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아직도 너무 당황해서 키보드가 제대로 안 쳐지네요. 오늘 점심에 겪은 일인데 밤이 되도록 혈압이 안 내려와요. 주말에 친구 언니 통해서 소개팅 하나 받았거든요. 상대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해서 큰 기대 없이 나갔어요. 사진상 인상은 깔끔하고 나쁘지 않아서 일단 보자 싶었죠.
장소는 제가 인스타에 저장만 해뒀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어요. 1인 5만원 훌쩍 넘는 곳이라 첫 만남에 좀 과한가 싶었지만 분위기 좋은 데서 먹는 게 서로 예의라고 생각했거든요. 창가 쪽 2인석에 마주 앉아서 파스타랑 스테이크 하나씩, 하우스 와인 한 잔씩 시켜놓고 얘기했는데 대화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요. 근데 딱 계산할 때 분위기가 싸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직원이 테이블로 빌지를 가져오니까 남자가 먼저 일어나더니 계산대 쪽으로 가더라고요. 저도 뒤따라 갔는데 갑자기 바지 주머니랑 재킷 주머니를 번갈아 뒤적거리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거예요. 그러더니 저를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어… 지갑을 집에 두고 온 것 같아요. 폰을 바꿔서 간편결제도 등록이 안 돼 있는데 어떡하죠?” 이러는 겁니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요즘 누가 현금 없이 나가도 폰으로 다 결제하는데 페이조차 안 된다? 이건 대놓고 얻어먹겠다는 수작 아닌가요?
뒤에 웨이팅 손님들까지 우리 쪽을 쳐다보는데 남자는 식은땀만 흘리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그 어색한 공기에 숨이 막혀서 제가 그냥 카드 꺼내서 긁었어요. 긁으면서 한마디 했죠. “오늘 준비가 하나도 안 되신 것 같네요. 제가 샀다고 치죠. 제가 적선했다고 생각할게요.” 18만원 찍히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계산 끝나자마자 인사도 안 하고 가방 들고 바로 나와버렸어요.
근데 조금 전에 주선해준 언니한테 연락이 왔는데, 그 남자가 언니한테 제 뒷담화를 엄청나게 했다는 거예요. 제가 너무 기가 세서 숨이 막혔다, 사람 앞에서 모욕 주는 말투가 거의 고문 같았다 이러면서요. 아니 밥 얻어먹어놓고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기 세다고 욕하는 게 정상인가요? 지갑 안 가져온 건 귀여운 실수고, 팩트대로 말한 저는 기 센 여자가 되는 건가요? 진짜 이 남자 주변에 소문 다 내고 싶은 심정인데 제가 예민한 건지 판단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