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인데 눈이 하나도 안 감겨서 그냥 키보드나 두드립니다. 여러분도 가슴 한켠에 뽀얗게 포장해둔 첫사랑 기억 하나쯤 있잖아요? 저는 ◌◌ 오빠였어요. 동네에서 제일 똑똑하고 웃으면 눈이 반달로 접히던 오빠. 그 오빠가 15년 만에 갑자기 ‘잘 지내냐’ 하고 톡을 보내왔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온 오빠는 여전히 번듯하더라고요. 로고 하나 없는 무지 셔츠인데도 촉감부터 비싸 보이는 거, 발끝까지 광낸 구두까지. 저는 사무실 책상에 끼여 한 달 내내 엑셀이랑 씨름해서 250 찍히는 월급으로 대출 갚는 인생인데, 오빠는 입만 열면 성공, 경제적 자유, 시스템 소득 타령이었어요. ‘◌◌야, 넌 아직도 그런 세상에서 사니?’ 그 한마디에 제 월급봉투가 머릿속에서 쫙 스쳐서 고개도 못 들겠더라고요.
창가 자리에서 라떼 거품 가라앉을 때까지 듣고 있는데 오빠가 갑자기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척 올려놓고 피라미드 같은 구조도를 슥슥 그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글로벌 마케팅 하부 파이프라인을 선점해야 한다’ 처음엔 와 진짜 대단한 사업가가 됐나 보다 하고 눈 반짝이며 들었는데 들을수록 뭔가 쎄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목소리 기어들어가서 물었죠. 이거 결국 사람 끌어모아서 물건 팔고 밑에 사람 깔아야 내가 돈 버는 구조 아니냐고.
그 순간 오빠 표정이 얼음처럼 굳더라고요. ‘◌◌야, 오빠가 너 아끼니까 특별히 내 팀에 넣어주려는 건데 네 수준이 고작 여기냐?’ 하면서 사람을 벌레 보듯 훑어내리는 겁니다. 15년 동안 예쁘게 간직했던 제 짝사랑이 그 자리에서 ‘잠재적 하부 조직원’ 딱지로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는데 입에서는 ‘오빠 미안해, 내가 몰라서 그랬어’ 소리가 먼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사과하고 카페 문 열고 나왔습니다. 저 진짜 바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