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키보드부터 잡았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서 문장 하나 쓰는 게 버겁네요.
저는 그냥 평범한 중소기업 마케팅팀 대리 3년 차고, 3년을 만난 남친은 소위 상업영화 바닥에서 꽤 이름 있다는 조감독이었습니다. 밤샘 촬영에 밥도 못 먹는 모습 보면 안쓰러워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새벽에 김밥 싸서 현장까지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배달하고, 스태프들 커피 20잔씩 돌리고, 제 월급 절반은 그냥 그 사람 체면 세워주는 데 다 녹았어요.
그러다 작년 11월쯤 남친이 눈에 불을 켜고 말하더군요. 유명 제작사에서 단편 하나 자비로 찍어오면 바로 장편 입봉을 시켜준다는 딱 한 번의 기회라고요. 제작비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는 걸 보고 저는 완전히 미쳐서 비상금 5,000을 통째로 갖다 바쳤습니다. 5년 동안 야근수당 모아서 만든 적금 2,800에, 엄마한테는 전세 보증금 보태야 한다고 거짓말해서 빌린 1,200, 그리고 정말 미쳤었는지 회사 경비 1,000을 잠깐 당겨 썼다가 식은땀 흘리며 메운 돈까지 다 합친 겁니다.
촬영 마지막 날, 그 사람은 세상 다 가진 얼굴로 뒤풀이 간다고 활짝 웃으며 나갔어요. 그게 제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전화, 카톡 전부 먹통. 불안해서 살던 원룸 찾아가 보니 짐은 흔적도 없이 빠졌고 집주인은 보증금 빼서 이사 갔다고 하더군요. 영화판 바닥에선 이미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 단편 주연 신인 여배우랑 같이 사라졌다고요.
지금 제 통장엔 0원 찍혔고 카드사 독촉 문자만 하루에 세 통씩 옵니다. 회사에선 경비 건으로 언제 인사팀에서 부를지 몰라 매일 숨죽여 출근하고요. 그 사람은 제가 회사 돈 당겨 썼던 걸 알아요. 그래서 제가 신고 못 할 거라고 믿고 일부러 잠적한 것 같습니다. 생각할수록 속이 뒤집히고 숨이 턱 막혀서 미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