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짜리 일본 출장 끝내고 캐리어 끌고 현관 도어락을 찍었는데 센서등이 켜지자마자 공기가 싸했습니다. 분명 빈집으로 비워두고 갔는데 신발장 2단째에 제 것도 아닌 스트랩 달린 여자 샌들 한 켤레가 떡하니 놓여 있었고, 원룸 안쪽에서는 TV도 안 켰는데 낯선 여자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랑 배달앱 알림음이 함께 새어 나오더군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안방 슬라이딩 도어를 열었더니 제 침대 한가운데서 제가 아끼던 잠옷을 입은 낯선 여자와 제 남친이 다리를 꼬고 앉아 배달 떡볶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오는데, 저를 본 남친의 첫마디가 더 가관이었습니다. 사과는커녕 눈도 제대로 안 마주치고 "어? 너 내일 온다며 왜 벌써 왔어?" 라며 어깨를 으쓱하더군요. 그 뻔뻔한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습니다. 옆에 있던 여자는 화들짝 놀라 제 잠옷 자락을 움켜쥐고 일어나 나가려는데, 남친이 그 팔을 붙잡더니 오히려 저한테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야 너는 왜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냐? 여기가 네 집이면 다냐, 같이 쓰는 집이지" 라면서요.
제 명의로 된 전세방에 보증금이든 월세든 한 푼 보탠 적 없는 인간이 제 옷이며 샴푸며 침대까지 다 쓰더니 이제는 다른 여자를 데려와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당장 두 사람 짐 싸서 나가라고, 오늘 당장 비밀번호 바꾸고 다시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남친이 갑자기 코웃음을 치며 비웃더군요.
"희수야 너 진짜 못됐다. 전세 하나 얻었다고 유세 떠는 거냐? 내가 취준생이라 돈 좀 없는 게 그렇게 무시할 일이냐? 겨우 방 한 칸 가지고 가난한 사람 길바닥에 내쫓는 거 그거 인격 모독이야. 너 완전 빈부격차로 사람 가르는 속물이었구나?" 자기가 저지른 외도는 쏙 빼놓고 제가 퇴거를 요구한 걸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 횡포로 둔갑시키는 그 기적의 물타기 논리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도 월급 쪼개고 대출 이자 꼬박꼬박 내가며 어렵게 지켜온 소중한 보금자리인데, 제 호의를 당연한 권리인 양 누리더니 이제는 제가 가해자인 것처럼 몰아가는 그 눈빛이 소름 그 자체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친은 거실에서 부모님께 전화 걸어 제가 돈 있다고 무시하며 자기를 길바닥에 내쫓았다고 목소리를 떨며 연기 중입니다. 제가 예민한 건지, 이 인간을 어떻게 깔끔하게 치워야 할지 눈물을 닦으며 글을 올립니다.
댓글 조언대로 당일 저녁 바로 도어락 비밀번호를 교체하고 남친 짐은 전부 현관 밖 복도에 빼두었습니다. 얼마 뒤 남친이 경찰과 함께 나타나 사실혼 관계라 주거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문을 열라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제가 계약서와 계좌 이체 내역, 그리고 집 안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 있던 홈캠 영상을 보여주자 출동한 분들도 고개를 저으며 남친을 제지했습니다.
결국 동행했던 여자가 짐 일부를 챙겨 먼저 떠났고 남친은 아직도 제 신상을 퍼뜨리겠다며 위협성 문자를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내대로 변호사를 선임해 위협과 명예훼손, 무단 거주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 중입니다. 직장에 알려질까 조마조마하지만 이번 기회에 제 인생의 얼룩을 확실히 지우려 합니다. 도와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