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다 끝내고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습니다. 화나서가 아니라 드디어 속이 뻥 뚫려서 그런 것 같아요. 3년 믿고 산 남편이란 인간이 제 명의 전세보증금 3억을 몰래 담보로 잡혀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다 처박고 홀라당 날린 뒤, 은행 연체 통지서가 현관 우편함에 꽂힌 걸 제가 먼저 봤을 때 이미 이 관계는 끝났다고 판단했거든요.
오늘 아침까지도 그 인간은 뭐가 잘못인지 1도 모르더라고요. 우리 노후 위한 투자였다, 조금만 버티면 원금 회복된다는 사기꾼 레퍼토리만 읊어대길래 그냥 비웃어줬죠. 출장 간다며 캐리어 끌고 현관 나간 지 2시간도 안 돼서 바로 실행했습니다.
안방 붙박이장이랑 드레스룸에 쳐박힌 그 인간 명품 티셔츠, 한정판 운동화 박스, 결혼할 때 시댁에서 해왔다고 입만 열면 자랑하던 비싼 양복까지 죄다 검은 봉투에 쑤셔 넣어서 단지 뒤편 재활용장 바닥에 패대기쳤어요. 경비 아저씨가 놀라서 뭐 하는 거냐고 묻길래 쓰레기 너무 쌓여서 대청소 중이에요 하고 웃어넘겼네요.
바로 기사 불러서 현관 도어록 비번 싹 갈아엎었습니다. 남편 폰에 깔린 스마트 도어록 앱 연동도 전부 로그아웃 시켜버렸고요. 아까 퇴근 시간 맞춰 돌아와서 비번 찍고 띠리릭 실패음에 당황해서 문 쾅쾅 두드리는 소리, 그게 오늘 들은 소리 중에 제일 달콤하더군요.
지금 복도에서 경찰 부른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전 꿈쩍도 안 할 겁니다. 등기부등본이고 계약서고 전부 제 명의인 집인데 왜 제가 나가요? 전세 3억을 증발시킨 건 저쪽인데 제가 유난 떠는 거냐고요? 솔직히 이런 인간한테는 이 정도도 약과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