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신부가 될 예정이었다. 1년 넘게 공들인 특급 호텔 예식,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수입 실크 드레스, 하객들 탄성이 터질 완벽한 무대까지 전부 내 손으로 설계한 인생 최고의 날이었으니까.
그런데 본식 30분 전, 신부 대기실 묵직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웬 모르는 여자가 돌도 안 돼 보이는 애를 품에 안고 쑥 들어왔다. 처음엔 뒤늦게 온 하객인 줄 알고 웃으려는데 대뜸 내 코앞까지 와서 내뱉더라. ‘어머, 이 애 네 남편이랑 붕어빵이네? 새엄마 된 거 축하해.’
머리가 하얘졌다. 남편은 결혼 준비 내내 전 여친이 스토커처럼 집착해서 번호까지 버리고 도망쳤다며 질색을 했었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오히려 내가 나서서 그 여자한테 경고 문자까지 날리며 남편을 지켜줬다고 생각했는데, 내 무릎 위에 올려진 그 애 얼굴은 남편 어릴 적 사진에서 그대로 떼어온 듯 이목구비가 똑같았다.
여자는 당황해 굳은 내 표정을 비웃더니 그대로 아이를 내 드레스 치마 위로 툭 올려 앉혔다. 수천만 원짜리 순백 실크에 아이 운동화 자국이 찍찍 남고 레이스가 구겨지는데도 나는 손 하나 못 뻗고 얼어붙었다. 복도에서는 하객들 웃음소리와 축가가 울리는데 대기실 안 공기만 칼바람처럼 싸늘했고 그 여자 입꼬리엔 소름 끼치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소란에 뒤늦게 뛰어온 남편은 그 여자와 아이를 보자마자 얼굴에서 피가 싹 가시더니 문틀을 잡고 뒷걸음질만 쳤다. 그 꼴을 보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오빠, 이게 무슨 상황이야, 당장 말해봐!’ 악을 썼지만 남편은 입술만 덜덜 떨 뿐 한마디도 제대로 뱉지 못했다.
결국 복도 소리를 듣고 양가 부모님까지 대기실로 몰려들면서 예식은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다. 나는 지금 식도 올리지 못한 채 호텔 객실에 처박혀 이 글을 두드리고 있다. 남편은 문 밖에서 무릎이라도 꿇을 듯 친자 검사부터 하겠다고 울며 매달리는데,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뭘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내 인생, 내가 그토록 공들여 쌓아 올린 완벽한 꿈이 10분 만에 갈기갈기 찢겼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분노가 과민한 거냐고? 그 여자는 마지막까지 내 귀에 바짝 붙어 ‘네가 뺏은 대가야’ 하고 속삭이고 나갔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건데?
글을 올린 뒤 호텔 방에 틀어박혀 밤을 꼬박 새며 울었다. 남편이라 믿었던 사람은 복도에서 한참을 빌더니 새벽이 되자 자기 부모와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예비 시부모는 오히려 우리 아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그 여자가 돈을 노리고 꾸민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더 아찔했던 건 그 여자가 내가 예전에 보낸 경고성 메시지들을 전부 갈무리해 변호사에게 넘겼다는 사실이었다. 익명 계정으로 사생활을 퍼뜨리겠다고 압박한 내용까지 이미 다 알고 있더라.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정 부모님은 얼굴이 굳어 집안 망신이라며 파혼을 서두르고 당분간 멀리 나가 있으라고 하셨다.
남편은 뒤늦게 친자 결과가 나오면 다시 대화하자며 연락을 해왔지만 이미 마음은 돌아섰다. 그런데 드레스에 찍힌 아이 운동화 자국은 아무리 손봐도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내 인생에 남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 같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허무했다.
현재 변호사를 알아보고 보상을 청구할 준비를 하는데 그 여자 쪽에서도 명예를 훼손했다며 맞대응을 예고해 진흙탕 싸움이 될 분위기다. 인스타 피드는 전부 비공개로 돌렸고 결혼을 축하해주던 친구들은 단체 대화방에서 내 얘기를 뒷담화하기 바쁘다. 화려하게 쌓아 올린 꿈이 한순간에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