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디에도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익명에 기대어 글을 씁니다. 지금 손이 덜덜 떨려서 키보드가 제대로 안 눌려요.
전 흔히 말하는 금수저로 자랐어요. 사업하는 아버지와 교양 있는 어머니 밑에서 외동딸로 부족함 없이 컸고, 저도 그 기대에 맞춰 빠지는 구석 없는 완벽한 딸인 척 연기하며 살았어요. 성적, 스펙, 외모 하나 흠잡을 데 없게요.
며칠 전이에요. 부모님이 둘 다 외출하신 틈에 서재 정리 좀 도와드린다고 들어갔다가 책장 옆 붙박이 금고가 1cm 정도 벌어져 있는 걸 봤어요. 평소 절대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던 곳인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손이 가더라고요. 살짝 당겨보니 부동산 서류 더미 사이에 누렇게 바랜 편지봉투 하나가 끼어 있었어요.
봉투를 열어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어요. 2003년 날짜로 '현금 5,000만원 수령 및 권리 포기 각서'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더라고요. 생모로 추정되는 여자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었고 '아이를 인도하는 대가로 현금 5,000만원을 정히 수령하였으며 향후 일체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어요.
더 소름 돋은 건 그 밑에 같이 들어 있던 송금 내역서였어요. 보내는 사람 아버지 이름, 받는 사람 그 여자 이름으로 5,000만원이 찍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사랑으로 입양된 딸이 아니라 20년 전에 현금 5,000만원에 인수된 물건이었던 거예요. 그걸 부모님이 20년 동안 고이 보관까지 해놓은 거고요.
평생 저를 사랑으로 키웠다던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는데 헛구역질이 나더라고요. 제가 걸친 비싼 옷, 다니는 대학, SNS에 올리던 화려한 일상까지 전부 그 거래에서 시작된 거잖아요. 매년 생일마다 '네가 우리에게 온 건 축복이야'라며 호텔 빌려 파티 열어주던 모습이 이제는 전시용 인형 자랑하던 쇼 같아서 소름이 끼쳐요.
아직 부모님은 제가 이 사실을 안 줄 모르세요. 지금도 거실에서 과일 깎으며 '딸, 나와서 먹어' 하시는 목소리 들리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20년 동안 완벽한 인형 하나 사다 놓고 대리만족하신 걸까요? 이 기만적인 분들을 상대로 위자료라도 받아내야 할지, 당장 이 지옥 같은 집에서 뛰쳐나가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