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 쓰는 지금도 너무 당황스러워 제대로 타이핑이 안 됩니다. 가슴 한가운데가 칼로 도려낸 것처럼 쓰리고 아파요. 남편 하나만 믿고 달려온 게 10년입니다. 딱 10년이요.
겉에서 보면 저희는 누가 봐도 잉꼬부부였어요. 남편은 사람들 앞에서 저를 보물이라고 부르고 기념일이며 생일이며 한 번도 빼먹은 적 없는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단 하나, 아이만 없었어요. 저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원했고 남편은 그때마다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며 서두르지 말자고 제 등을 토닥였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시작한 난임 치료가 올해로 5년째입니다. 그동안 제가 겪은 건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 배에 셀 수 없이 주사를 찔러 넣고 호르몬제 때문에 얼굴이며 몸이며 퉁퉁 붓고 피부도 다 뒤집어졌어요. 시술 당일이면 산부인과 그 차가운 굴욕의자에 다리 벌리고 누워 천장 조명만 보면서 이를 악물고 울었습니다. 그걸 몇 번을 했는지 이제 세는 것도 지쳤어요.
명절 때마다 시부모님은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근히 아이 얘기를 꺼내셨고 저는 매번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못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이 제 앞에 서서 부모님을 막아줬어요. 그 모습이 고마워서 저는 더 악착같이 다음 시술을 잡았습니다. 몸이 망가지는 건 아무 상관없었어요. 아이만 있으면 우리 가족이 완성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제 일이 터졌습니다. 안방 드레스룸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남편의 낡은 서류 가방, 지퍼가 고장 난 그 가방을 정리하다가 맨 아래 깔린 진단서 뭉치를 발견했어요. 남편은 그동안 제 검사 결과든 자기 검사 결과든 자기가 다 챙겨서 병원에서 직접 받아온다고 했거든요. 그 종이에 찍힌 날짜를 보는 순간 숨이 멎었습니다. 결혼식 올리기도 전, 정확히 10년 전 날짜로 정관수술 완료라고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10년이에요. 저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그 모든 밤마다 남편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절대 임신될 수 없다는 걸요. 제가 주사 맞고 피눈물 흘리며 병원 들락거릴 때 남편은 대학 선배라는 그 병원 원장이랑 입 맞춰가며 제 앞에서 연기를 한 겁니다. 그때 남편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어 있었을까요.
지금 남편은 거실에서 무릎 꿇고 앉아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빕니다. 무서워서 말을 못 했다고, 아이 없는 삶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를 잃을까 봐 그랬다고요. 그게 실수랍니까? 제 인생 10년, 여자로서 가장 빛나던 30대 전체를 통째로 짓밟고 생쇼를 한 게 실수라는 말로 덮입니까? 지금은 남편 얼굴만 봐도 속에서 울렁거려 고개도 못 돌리겠습니다. 저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