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여자는 귀신같이 타이밍을 맞춰서 제가 도서관 가려고 슬리퍼 끌고 복도로 나오거나, 마트 마감세일 시간에 맞춰 장바구니 들고 현관문을 잠그는 그 10초를 절대 놓치지 않더라고요. 문을 일부러 반쯤 열어놓고 있다가 "어머, 애 엄마가 저렇게 수수하게 입고 다니면 애가 위축돼요." "어머 그 경차 아직도 타세요? 우리 남편이 이번에 제 생일 선물로 외제차 계약했는데 승차감이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하면서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그 비웃는 눈빛이 아직도 선해요.
사실 저는 아버지가 가진 상가 세 채 관리 보조를 하고 있어요. 월세 입금 확인하고, 누수 생기면 업체 부르고, 세입자 민원 정리하는 자잘한 일들을 도맡다 보니 하루 종일 건물 계단을 오르내려야 해서 면바지에 후드티가 제일 편할 뿐이죠. 손에는 항상 다이소 장바구니나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데, 옆집 여자는 그게 제 인생 전부인 줄 알았나 봐요.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게 세상 전부인 사람이라.
그러다 지난주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어요. 상가 한 곳 302호가 6개월째 월세를 밀리고 연락도 안 된다며 관리대장 들고 5층 사무실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는 원래 체납이나 민원 반복하는 세입자는 직접 불러 마지막 통보하고 정리하시는 분이라, 저도 대충 머리만 묶고 태블릿이랑 대장 챙겨서 아버지가 제일 아끼는 그 상가 건물 5층 사무실로 올라갔죠.
사무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아버지 책상 맞은편에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앉은 남자가 옆집 그 남편이었고, 옆에는 평소 동네에서 보던 수수한 차림은 온데간데없고 트위드 재킷에 명품백을 부여잡고 눈물을 훔치는 옆집 여자가 서 있었어요. 남편 사업장 임대료가 반년째 밀려 보증금에서 다 까고 나가라는 통보를 듣고 둘이 같이 사정하러 온 거였죠.
제가 들어서자 아버지가 태연하게 "왔냐, 관리대장 가져왔지? 302호 미납 내역이랑 공용부 훼손 원상복구 견적, 이분들 앞에 다시 한번 읽어드려라."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옆집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 저랑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얼굴에서 피가 싹 가시더라고요. "어... 어머... 어머나..." 입에서는 말도 안 나오고 가느다란 숨소리만 새어 나왔어요.
저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태블릿을 켜서 달달 외웠죠. "302호, 6개월 연체, 연체료 포함 1천 얼마, 공용부 훼손 복구비 별도입니다. 아, 지난번 말씀하신 외제차 계약금이랑 금액이 딱 맞네요. 그쪽으로 돌리셨나 봐요." 하니까 남편이 황당하다는 듯 아내를 쳐다보고, 여자는 바닥에 구멍이라도 뚫고 싶은지 고개를 푹 숙이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더라고요. 아버지는 서류를 덮으며 차갑게 마무리하셨어요. "우리 딸이 관리하는 건물에서 기본도 안 지키는 분과는 더 인연 이어가기 어렵겠네요. 절차대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