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 코앞이라 옷방 정리하다가 진짜 손발이 다 떨렸습니다. 원래 명품 좋아하는 거 다 알고 저는 승무원 때부터 가방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했거든요. 근데 5년 전 생일에 남편이 준 그 가방, 모서리 가죽이 살짝 뜨길래 백화점 명품관 수선 카운터에 그냥 맡기러 간 거예요. 별생각 없이.
카운터 직원이 장갑 끼고 가방 뒤집고 안감 스티치까지 한참을 보더니 목소리 깔고 그러더라고요. 시스템에 등록된 정품이 아니라고. 어이없어서 남편이 준 보증서, 더스트백까지 다 꺼내 보여줬는데 직원이 더 난감한 얼굴로 이건 완성도가 높은 위조품이라 저희 쪽에선 수선 자체가 불가하다고 딱 잘라 말하는데, 사람 많은 매장 한가운데서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옷방 행거 밑에 줄 세워둔 상자 12개를 다 꺼내 거실 바닥에 펼쳐놨습니다. 결혼기념일, 생일, 애 낳았을 때 준 출산 선물이라며 남편이 안겨주던 것들 전부요. 다음날 바로 사설 감정소 세 곳을 돌았는데 결과가 더 기가 막힙니다. 12개 전부 A급 가품. 전문가 아니면 구분 어렵게 만든 가짜라는 거예요. 그 가짜들 메고 브런치 모임 나가서 어깨 으쓱하고, SNS에 인증샷 올리며 좋아요에 취해 있던 제 지난 10년이 필름처럼 지나가는데 속이 뒤집히더라고요.
퇴근한 남편 붙잡아 앉혀놓고 감정서 12장을 바닥에 뿌렸더니 처음엔 말 더듬더니 나중엔 오히려 큰소리치더라고요. 너도 내가 월급쟁이인 거 뻔히 알면서 매년 수천만 원짜리 가방을 당연하다는 듯 바라지 않았냐, 네 체면 세워주려고 내가 얼마나 머리 숙이고 가짜 구하러 다녔는지 아냐고요. 10년 내내 사랑인 줄 알고 받았는데 알고 보니 제 인생 자체를 가짜로 만든 사기였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당장이라도 짐 싸서 나가고 싶은데, 솔직히 더 무서운 건 그동안 가짜 메고 자랑했던 거 우리 모임 애들이 다 알게 될까 봐 그겁니다. 저 어떡해야 하죠?
글을 올린 뒤 며칠이 지났는데도 집안 공기는 더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남편은 그날 바로 짐을 챙겨 시댁으로 들어갔고 시어머니는 전화로 네가 과한 욕심을 부려 아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며 오히려 저를 몰아세우셨습니다. 제가 카드를 긁어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10년 동안 속여 온 일이 덮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시댁으로 간 뒤 남편은 메시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저는 사과를 받아야 할지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밤마다 뒤척이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가 쓴 글이 여러 커뮤니티로 퍼지면서 저를 아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들에게서 그때 그 가방 진짜 맞았냐는 식의 비꼬는 연락이 잇따라 휴대폰 알림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 화면을 켜기가 겁납니다. 댓글에는 브런치 모임에서 봤던 가방 얘기까지 등장해 얼굴이 화끈거려 외출도 꺼려집니다. 변호사 상담에서는 남편의 오랜 속임이 이혼 사유는 될 수 있으나 선물 자체만으로 별도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쌓아 올린 가짜 성벽 안에 갇힌 신세가 됐습니다. 가방 12개를 당장 치워버리고 싶다가도 제 허영이 남긴 흔적 같아 거실 한가운데 그대로 둔 채 매일 밤 술로 버티고 있습니다. 거실 바닥에 늘어선 상자를 보면 지난 10년이 허상으로 느껴져 한숨만 나옵니다. 남편과는 연락이 끊긴 상태고 제가 당한 건지 제가 자초한 건지 구분조차 흐려져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