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마침표 찍고 전송 버튼 눌렀다. 막상 누르고 나니까 얼음물 끼얹은 것처럼 속이 서늘하게 가라앉더라. 거실 소파에 노트북 올려두고 무릎 위에 손 올린 채 한참을 그 화면만 쳐다봤다.
시작은 안방 드레스룸 서랍 맨 아래, 겨울 니트 더미 사이에 처박혀 있던 호텔 영수증 한 장이었다. 법인카드로 긁은 평일 오후 2시 대실 결제, 거기에 파스타 2인분에 와인까지 찍혀 있더라. 12년을 한 침대에서 자고 한 밥상에서 밥 먹은 놈이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눈물 대신 머리가 차갑게 식으면서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회계법인에서 10년 넘게 숫자만 보고 살았다. 숫자는 절대 거짓말 안 하고 기록은 꼭 꼬리를 남긴다. 남편이 출장 간다며 집 나선 날들의 KTX 예매 내역, 지웠다 착각하고 구글 클라우드 휴지통에 그대로 처박혀 있던 둘이 딱 붙어서 찍은 사진들, ‘와이프가 눈치챌까 봐 조심해야 돼’라며 쪽팔리지도 않게 속삭이던 카톡 백업 파일까지 하나하나 뽑아냈다.
상대는 남편 회사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스물여섯짜리 신입이었다. 내가 남편이랑 월세 옥탑에서 라면 끓여 먹으며 밑바닥부터 다질 때 그 애는 교복 입고 학교 다니던 애다. 그 애가 내 집 안방을 헤집었다는 생각에 구역질이 올라오더라. 남편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고 어제까지도 거실에서 아들 학원 얘기하면서 자상한 아빠 코스프레를 했다. 그 웃는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그래서 안 서둘렀다. 딱 3개월, 증거 하나하나 스캔 떠서 날짜별로 폴더 나누고 엑셀에 동선이랑 카드 결제 내역까지 대조해서 정리했다. 법인카드로 긁은 호텔, 식당, 선물 내역까지 시간대별로 줄줄이 엮으니까 누가 봐도 변명 불가능한 표가 완성되더라. 그리고 오늘, 남편 회사 대표이사 메일로 그대로 쏴버렸다. 마침 그 사람은 내 대학 선배 오빠다.
메일 제목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썼다. ‘업무 관련 중요 제보의 건’이라고. 근데 첨부파일은 그냥 지옥 그 자체다. 캡처본 100장이 넘고 녹취록에 시간대별 동선표, 호텔 결제 내역까지 전부 묶어서 PDF로 만들었다. 그 선배는 평소에 도덕성, 기강 잡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다. 사내 불륜에 법인카드 사적 사용까지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안 봐도 뻔하다.
이제 곧 남편 퇴근 시간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현관문 열고 들어와서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어’라며 또 그 가식적인 위로 타령을 할 텐데, 그 얼굴이 어떻게 굳어가는지 직접 보고 싶어서 거실 소파 정중앙에 허리 곧게 펴고 앉아 기다리고 있다. 가장 우아하게, 가장 차갑게 맞이해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