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세상이 망해가는 건지 나만 골라서 나락으로 밀어넣는 건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 현관문에 빨간 경매 딱지 붙은 거 보고 그대로 주저앉았어요. 제가 살던 빌라가 경매로 넘어갔다고 당장 내일부터 길바닥에 나앉으라네요. 전세금 1억 8천, 대출 끌어모은 제 전재산인데 빌라왕이라는 놈 하나 때문에 인생이 통째로 날아갔어요.
계약할 때 그때 분위기 아직도 생생해요. 좁은 부동산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데 중개인이랑 집주인이 번갈아가며 얼마나 다정하게 구는지. 신축이라 복도 페인트 냄새도 안 가셨고 3층 남향이라 오후만 되면 거실 전체에 햇살이 꽉 차는데 여기서면 진짜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 싶었죠. 집주인이 명함 내밀면서 건물 수십 채 굴린다고, 지방에서 올라와 고생하는 게 대견하다며 계약만 해주면 이사비로 500 현금으로 바로 챙겨주겠다더라고요.
솔직히 중개인이 옆에서 보증보험 얘기 한 번 흘리긴 했어요. 근데 집주인이 워낙 어깨 펴고 당당하니까 에이 설마 싶었죠. 돈도 많아 보이는 사람이 일부러 사기 치겠냐, 보험료 몇십 만원 아깝게 왜 내나 싶었어요. 그 500 들어오자마자 백화점 달려가서 눈에 담아뒀던 명품백 결제했을 때 그 행복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게 제 유일한 낙이었는데.
근데 결과는 완전 뒤통수죠. 집주인 전화는 먹통이고 알고 보니 세금 밀리고 근저당 꽉꽉 채워진 깡통주택이었대요. 나라에서는 그동안 뭐 했냐고요. 이런 놈들 활개칠 땐 세금만 꼬박꼬박 걷어가더니 막상 제가 길바닥에 나앉게 생기니까 도와줄 방법이 없대요. 법은 도대체 누구 편이냐고요, 서민은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요.
오늘 박스 정리하면서 그 가방만 만지작거렸어요. 이거 하나 산 게 그렇게 큰 죄예요? 남들처럼 SNS에 맛집 사진 올리고 예쁜 옷 입고 인증하는 게 그렇게 잘못됐나요. 연락 오는 지인들도 겉으론 걱정하는 척하면서 속으론 비웃고 있을 거 뻔하고, 특히 유진 언니는 예전에 제가 좀 잘난 척했다고 지금 와서 잔소리나 하고 있고. 억울해서 손이 덜덜 떨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