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학 다니면서 2년째 과외로 생활비 버티고 있는 24살 여자입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하루에 지하철 세 번 갈아타며 과외 세 탕 뛰고 끼니는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게 일상이라 글 올리는 것도 좀 민망하네요. 근데 진짜 어이가 없어서 조언 좀 구하려고 씁니다.
작년 11월부터 초등학교 5학년 아이 수학·영어 봐줬습니다. 매주 두 번, 그 집 거실 대리석 식탁에 아이 옆에 딱 붙어 앉아 문제집 한 권 끝낼 때마다 오답노트까지 만들어줬어요. 덕분에 겨울방학 지나고 성적이 눈에 띄게 올랐고, 학부모님도 커피에 디저트까지 챙겨주시면서 선생님만 믿는다고 하셔서 저도 정 붙이고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1월 과외비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매달 25일이 입금일인데 27일, 30일로 점점 밀리더니 결국 남편 사업이 좀 어려워서 다음 달에 같이 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이러시더라고요. 한 번만 봐드리자 했는데 그게 1월, 2월, 3월 이렇게 3개월째 한 푼도 안 들어왔습니다.
그 사이 제가 카톡으로 어머님 이번 달 거 언제쯤 가능할까요 하면 늘 답이 시어머니가 입원하셔서 병원비가 급하다, 아이 감기가 심해 정신이 없다는 거였어요. 솔직히 그때 학부모님 손에 들린 명품 가방이랑 현관 앞 외제차 키 보면서도 돈 얘기 꺼냈다가 잘리면 어떡하지 겁나서 세게 말을 못 했습니다. 제 고시원 월세 40만원도 두 달째 밀린 채로 그냥 꾸역꾸역 수업은 갔습니다.
그러다 어제 진짜 우연히 그 학부모님 계정을 봤습니다. 친구 추천에 떠서 눌렀는데 전체공개더라고요. 피드 쭉 내리니까 제가 들었던 사업 망했다, 병원비 없다는 말이랑은 완전 딴판인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편의점 도시락 데워 먹으며 버티던 그 3개월 내내 그분 피드는 매주 주말마다 5성급 호텔 호캉스로 도배돼 있었습니다. 인피니티풀에서 샴페인 들고 찍은 사진, 백화점 쇼핑백 쌓아놓고 한 가방 언박싱 영상, 1인 20만원 넘는 코스 요리 사진이 날짜까지 박혀서 빼곡하더군요. 2월에도 3월에도 빠짐없이요.
제일 어이없는 건 바로 어제입니다. 오전에 제가 입금 확인 부탁드린다고 보내니까 아이가 열이 나서 정신없어요,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라고 답장해놓고 두 시간 뒤에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선글라스 끼고 샴페인 터뜨리는 스토리를 실시간으로 올렸더라고요. 그걸 보고 방바닥에 앉은 채 한참을 멍했습니다. 속았다는 생각에 밤새 뒤척였습니다.
제 노동값 달라는 게 이렇게 눈치 보고 비굴해야 하는 일인가요? 제가 너무 만만해 보였나요, 아니면 그냥 바보처럼 굴었던 걸까요? 이제는 정으로 안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제 돈 제대로 받아낼 수 있을지 진짜 막막합니다. 방법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글을 올린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학부모가 제 글을 본 건지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게 부담스러웠던 건지 새벽에 갑자기 입금 알림이 울렸습니다. 밀려 있던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 치 과외비가 한 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금을 확인한 뒤에 온 카톡 내용이 더 가관이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돈이 급했으면 무섭게 커뮤니티에 글까지 올릴 게 아니라 미리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우리 아이가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실망스럽네요 라는 내용이었는데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저를 몰상식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투였습니다.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남아 있던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결국 바로 과외를 그만두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동안 쌓인 정 때문에 독촉을 망설였던 제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밀린 돈은 받았지만 사람에 대한 환멸과 허탈함은 쉽게 가시지 않네요. 걱정해 주시고 조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