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9살, 하루종일 사무실 의자에 붙어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10년을 넘게 붙어다닌 친구가 있는데 요즘 걔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네요. 신상은 보호 차원에서 A라고 하겠습니다.
A는 솔직히 집안 형편 넉넉한 애도 아니고, 졸업하고도 변변한 직장 없이 카페 알바, 쇼핑몰 알바 전전하던 애였어요. 그런데 작년 겨울부터 갑자기 인스타 피드가 명품 가방, 덩치 큰 외제 SUV, 호텔 코스 요리 사진으로 도배가 되더라고요.
물어보니 주식으로 제대로 터졌다더군요. 처음엔 진짜 잘됐다 싶어서 '대박이다, 축하해' 했죠. 근데 명품이 사람을 만드는 건지 원래 밑바닥이 그런 건지, 그때부터 말투가 싹 바뀌더라고요. 대놓고 내려다보는 느낌?
며칠 전 오랜만에 보자고 해서 나갔더니, 카페 앞 이중주차 해놓고 그 차 끌고 와서는 조수석 문까지 열어주며 태워주겠다 생색이더라고요. 조수석에 앉으니 가죽 냄새 풀풀 나는 차 안에, 그 비싸다는 가방을 무릎 위에 턱 올려놓고 제 지갑 한번 쓱 보더니 '야 너 아직도 그런 거 들고 다녀? 여자는 겉이 다야'라며 코웃음을 치더군요.
제가 사무실에서 월급 받아 꼬박꼬박 적금 붓고 사는 게 그렇게 한심해 보였나 봐요. 이제 자기는 급이 다르다, 나도 정신 차리고 꾸미고 살아라, 완전 훈계 모드더라고요. 그날 집 와서 편의점 도시락도 안 넘어가고 한참을 멍 때렸네요.
근데 진짜 세상은 돌고 도는 겁니다. 제 친동생이 렌탈사 쪽 채권 회수 업무를 하고 있거든요.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서 맥주 까면서 단말기 로그 정리한다길래 옆에서 봤는데, 압류 예정자 명단에 차 번호랑 이름이 너무 익숙한 거예요.
바로 A였습니다. 그 SUV도, 무릎 위에 올려놨던 가방도,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도 전부 렌탈이더라고요. 그것도 세 달 넘게 연체가 쌓여서 조만간 회수팀 붙어서 차 견인하고 물건 전부 수거 들어간다는 상태였어요.
인스타에선 세상 다 가진 재벌인 척, 현실에선 렌탈사 독촉 전화 피하려고 폰 번호까지 바꿔가며 숨어 살고 있었던 거죠. 동생 말로는 연체료까지 합치면 몇천 단위라던데, 그런 주제에 저 불러내서 그렇게까지 사람 깎아내리다니 소름 돋다가 헛웃음만 나오네요.
솔직히 지금 당장 걔 인스타 댓글에 '너 렌탈 연체로 곧 압류된다며?' 하고 다 까발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때 당한 굴욕 생각하면 손이 근질근질한데, 이 정보가 동생 단말기에서 나온 거라 괜히 동생한테 불똥 튈까 봐 꾹 참고 있습니다.
진짜 가짜 인생도 정성이다 싶네요. 그렇게 허세 부리며 남 무시할 시간에 연체나 갚지. 곧 그 번쩍이던 차 끌려가고 가방 뺏기는 날, 그 가면 벗겨진 얼굴이 어떤 표정일지 벌써부터 구경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