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이다 도저히 잠이 안 와서 글 올립니다. 혼자 끙끙 앓다 속이 터질 것 같아서요.
대학 때부터 10년 넘게 본 친구가 하나 있어요. 영화과 나와서 단편 찍는다고 맨날 예술 타령하는 애인데, 자기는 뭔가 남다른 사람인 척 하는 게 습관이에요.
그런 애가 갑자기 제 보물 1호 명품백을 며칠만 소품으로 빌려달라는 거예요. 제가 12개월 할부로 긁어서 산 가방이거든요. 아직 8개월째 카드값 꼬박꼬박 내는 중이고, 비 오는 날엔 가방에 비닐 씌워 들고 다닐 정도로 목숨처럼 아끼는 애예요.
당연히 처음엔 싫다고 했죠. 너무 비싸서 무섭다고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넌 예술의 가치를 몰라’ ‘친구 앞길 막는 속물이다’ 온갖 가스라이팅을 하더라고요. 저도 좋은 친구 이미지 깨기 싫고 소외되는 게 싫어서 결국 눈 딱 감고 빌려줬어요.
근데 그 다음부터 애가 증발했어요. 톡은 1도 안 읽고 전화하면 촬영 중이란 말만 하고 끊어버리더라고요. 불안해서 손이 덜덜 떨리는데, 혹시나 싶어 중고 마켓에 제 가방 모델명을 검색해봤어요.
세상에 진짜 제 가방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설마 싶어 사진 확대해봤는데 바닥 모서리에 제가 파우치에서 샌 립스틱 살짝 묻힌 분홍 자국까지 위치가 똑같아요. 소름이 쫙 끼쳤어요.
더 기가 막힌 건 가격을 제가 산 가격 반토막도 안 되게 올려놨더라고요. 바로 캡쳐해서 따졌더니 ‘촬영비가 너무 부족해서 잠깐 융통한 거다, 나중에 감독으로 대성하면 백 개 사줄게 이해해달라’는데 제가 이걸 이해해줘야 하나요? 진짜 어이가 없어요.
근데 또 웃긴 게 저도 예전에 친구한테 물건 빌렸다가 잃어버리고 모른 척 입 싹 닫고 넘어간 적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조용히 넘어가야 하나, 내가 뭐라 할 자격이 되나 싶어서 머리가 더 복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