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7년째 유치원에서 아이들 보고 있는 평범한 담임입니다. 오늘 낮에 겪은 일 때문에 아직도 손끝이 떨리고 속이 울렁거려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요. 제 교직 생활 통틀어 제일 소름 끼치고 어이없는 일이라,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지 아니면 이게 진짜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여러분 판단 좀 듣고 싶어서 글 올립니다.
저희 반에 학부모들 사이에서 일명 워너비로 통하는 준이(가명) 엄마가 있습니다. 등원할 때마다 깔끔한 원피스에 은은한 향수, 말투도 늘 나긋나긋하고 아이 밥은 무조건 유기농에 원어민 영어 과외까지 스케줄표 짜서 체크하는 분이죠. 저도 그 단정한 이미지에 괜히 더 신경 써서 준이 챙겨주고, 상담 때도 한 번 더 웃어드리고 그랬어요. 그런데 오늘 낮잠 시간, 아이들 매트 깔아주려고 사물함 쪽 정리하다가 준이 가방이 눈에 걸렸습니다. 겉은 멀쩡한 네이비 백팩인데 바닥이 왜 이렇게 딱딱하지 싶어서 안쪽을 뒤집어봤거든요.
처음엔 아이가 몰래 넣어둔 작은 장난감인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가방 밑창 안쪽, 시접 틈 사이에 검은 절연테이프로 아주 야무지게 고정된 네모난 물체가 있더라고요. 손톱으로 살짝 들춰보니 빨간 불이 깜빡깜빡하는 겁니다. 그냥 보조배터리 같은 게 아니라 마이크 구멍 뚫린 초소형 송신기였어요. 순간 머리가 하얘지면서, 그동안 교실에서 아이들 다독이고 혼내고 동료 선생이랑 뒤에서 학부모 얘기한 것까지 전부 실시간으로 어디선가 듣고 있었겠구나 싶으니까 등줄기에 식은땀이 쫙 흐르더라고요. 솔직히 바로 끄고 전화했어야 하는데 저도 그 작은 기계에 귀를 대고 한동안 망설였던 게 사실입니다.
바로 준이 엄마한테 전화 걸었습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더 기가 막히더군요. '어머 선생님, 준이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요. 선생님을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준이가 유치원에서 어떤 목소리로 친구들이랑 노는지 듣고 싶었을 뿐이에요. 선생님 떳떳하면 뭐가 문제예요? 오히려 이렇게 호들갑 떠시는 게 더 이상한데요?' 목소리에 죄책감이라곤 1도 없고 완전 당당하더라고요.
그 뻔뻔함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제 사생활이랑 교실 안 대화가 누군가한테 도둑맞았다는 모멸감은 그 사람한테는 그냥 '엄마의 사랑'으로 포장된 가벼운 해프닝일 뿐이더라고요. 원장님께 바로 보고했는데, 돌아온 건 '그 집이 평소 기부도 많이 하고 평판도 있으니 좋게 넘어가자'는 말뿐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예민한 겁니까?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인가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