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결혼한 지 2년 조금 넘은 서른한 살 여자입니다. 회계법인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도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답답해서 객관적인 조언을 듣고 싶어 올립니다. 남편은 반년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투자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있습니다. 제가 퇴근해서 들어오면 설거지 하나라도 하라고 사정했는데, 매번 더 큰 돈을 벌기 위한 준비 중이라며 코웃음만 치더군요.
일은 어제 오후에 터졌습니다. 요즘 남편 태도가 예사롭지 않아 거실 장식장 위랑 침실 장롱 위에 반려동물용으로 달아둔 홈캠을 계속 켜뒀는데, 사무실에서 점심시간 지나고 짬이 나서 영상을 켰다가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남편이 제 화장대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아 제가 애지중지 모은 한정판 립스틱 케이스를 하나씩 꺼내 바닥에 늘어놓고 있더군요.
처음엔 그냥 구경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뚜껑을 따더니 침실 전신거울 앞으로 가서 슥슥 긋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에 7~8만 원씩 주고 겨우 구한 한정판 컬러들을 아작내면서 거울 전체에 큼지막하게 빙고판을 그리는 거예요. 가로 세로 줄을 립스틱 심이 부러질 때까지 힘줘서 긋더군요. 그러더니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빤히 보면서 혼자 빙고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거울에 ‘자아’, ‘자유’, ‘망상’, ‘파멸’ 같은 소름 끼치는 단어들을 칸마다 적어 넣더니 하나씩 줄을 긋고는 “빙고! 내가 이겼어!” 소리를 지르며 낄낄거렸습니다. 눈은 풀려 있었고 제가 알던 남편이 아니었어요. 제가 제일 아끼던 40여 개를 전부 뭉개서 거울 아래 바닥에 던져놓고는 맨발로 그 위를 밟고 춤추듯 돌아다니는데 정말 공포였습니다.
저희 지금 남편 투자 실패로 빚만 8천만 원입니다. 제가 매달 대출 이자에 남편 용돈까지 챙기느라 제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가 립스틱 하나씩 사 모으는 것뿐이었는데 그걸 저렇게 짓밟다니요. 물건이 망가진 것보다 내 화장대, 내 거울 앞에서 보여준 그 기괴한 행태 자체가 너무 무섭습니다. 제가 퇴근해서 들어오니 남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거울을 대충 닦아놓고(물론 붉은 얼룩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녁 뭐 먹을까 묻더군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사람 정말 이상한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