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가 예민한 건지 세상이 나한테만 지독하게 구는 건지 구분이 안 돼서 글 올려요. 나 지금 전 남친 신혼집 보일러실에 숨어 산 지 딱 일주일 됐거든요. 욕하기 전에 사정 좀 들어봐요.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작년에 부모님이 전세 보태라고 쥐여준 돈 주식으로 한 방 노리다가 그대로 녹았고 카드값은 돌려막다 한도 초과 떴어요. 피팅 모델 일도 스물아홉 넘어가니까 콜 자체가 끊기고, 원룸 월세 세 달 밀리니까 집주인이 짐 빼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머릿속에 딱 떠오른 사람이 전 남친 하나였어요. 3년 전에 헤어지긴 했는데 그때 내가 오빠 명의로 몰래 대출 땡겨서 가방 산 거 때문에 싸우고 헤어진 거라 오히려 오빠가 나한테 미안해할 줄 알았거든요.
결국 흥신소 끼고 수소문했더니 오빠가 신도시 쪽 신축 대단지 아파트로 신혼집 차렸더라고요. 그것도 결혼까지 했다는 거예요? 소식 듣자마자 배신감에 피가 거꾸로 솟더라고요. 그래서 입주 당일 세탁기 냉장고 들어오는 틈 타서 현관으로 슬쩍 따라 들어갔어요. 다행히 그 집 베란다 쪽 보일러실이 배관이 한쪽 벽으로 몰려 있는 구조라 사람이 웅크리면 간신히 몸 하나 누울 틈이 나오더라고요.
낮에 두 사람 다 출근하고 집 비면 그때 살금살금 기어 나와요. 냉장고 반찬 꺼내 먹고 거실 소파에 대자로 누워 있다가 인기척 나면 다시 보일러실로 기어들어가고요. 근데 오빠 와이프라는 여자 화장대 보니까 진짜 단아하더라고요. 거기 내가 예전에 사고 싶어서 장바구니에만 담아뒀던 한정판 립스틱이 있길래 어제는 몰래 한 번 발라봤어요. 낮에 두 사람 침대에 살짝 누워봤는데 섬유유연제 향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오빠는 내가 보일러실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여자랑 거실에서 깔깔대며 웃고 있더라고요.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은 난데. 내가 오빠 이름으로 대출 좀 땡긴 거 가지고 그렇게 정색하지만 않았으면 지금 거기서 웃고 있는 게 우리였을 거 아니에요. 오빠가 냉장고 반찬 자꾸 줄어든다고 아내한테 짜증 내는 소리 들리는데 그거 내가 먹은 건데 왜 그 여자한테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예민한 건가요? 난 그냥 오빠 옆에 있고 싶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