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대행사 4년 차면 이제 신입 딱지 떼고 기획안 하나 정도는 혼자 책임지고 굴릴 수 있다는 소리 듣는 시기잖아요. 저는 이번에 모 대기업 연간 브랜드 캠페인 기획안에 진짜 영혼을 갈아 넣었어요. 석 달 동안 주말이고 새벽이고 없이 매달렸고, 현장 인터뷰부터 시장 조사, 전략 짜고 카피 뽑고 시안 잡는 것까지 제 손 안 거친 페이지가 없었으니까 이걸로 커리어 터닝포인트 만들 수 있다고 믿었죠. 매일 새벽 두 시까지 노트북 붙잡고 아침엔 필라테스로 버티는 생활이었어요.
그런데 최종 PT 당일, 팀장님이 저를 유리 회의실 바로 앞 탕비실에 대기시켰어요. 광고주가 까다로워서 책임자만 들어가는 게 깔끔하다는 거예요. 저는 복도 의자에 앉아 발표 소리만 들었죠. 결과는 대박이었어요. 기획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며칠 뒤 팀장님은 전사 공지에 성과 보너스 500에 연말 특별 승진 후보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떴더라고요.
팀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은 사람들 앞에서 제 머리를 토닥이며 수고했다, 잘했다 하셨어요. 당연히 제 이름도 언급되고 인센티브도 나눌 줄 알았죠. 근데 고과 시즌에 제 인사평가를 열어보니 등급은 그냥 B였어요. 팀장님이 올린 성과 보고서를 봤더니 이번 프로젝트가 전부 본인의 기획과 총괄 지휘 덕분인 것처럼 적혀 있더라고요. 중간에 방향 몇 번 잡아주신 건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코멘트 수준이었는데, 아예 제 이름은 빠져 있었어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따로 면담을 잡았어요. 조심스럽게 물었죠. 팀장님, 이번 기획안 거의 제가 다 썼잖아요, 최소한 보너스 일부라도 실무자 기여로 인정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팀장님이 피식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수 *아, 네가 너무 눈앞의 돈에만 매달리는 거 아니니?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네 이름으로 경험해 본 자체가 스펙이고 자산이야. 젊을 때는 돈보다 이런 경험이 쌓이는 거지. 나중에 내 자리가 네 자리 되는 건데 벌써부터 푼돈 따지면 큰 사람 못 된다?
그 말 듣고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됐어요. 제가 석 달을 갈아 넣은 결과는 팀장님 명품백이 되고 저는 그냥 상사 실적 채워주는 소모품이 된 기분이었거든요. 매일 야근하던 제가 바보 같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어요. 이게 제가 유난 떨고 예민한 건가요, 아니면 원래 업계가 다 이렇게 굴러가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