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견 광고대행사에서 4년째 기획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28살 대리입니다.
지난 2주 동안 팀 전체가 달라붙은 대형 클라이언트 제안서 작업이 겨우 끝났습니다. 메인 스토리라인부터 카피, 비주얼 레퍼런스까지 90%는 제가 새벽 두세 시까지 남아서 갈아 넣은 겁니다. 팀장은 외부 미팅, 본부장 보고 핑계로 자리 비우기 바빴고요. 최종본은 제가 퇴근 직전에 사내 서버 공유폴더에 직접 업로드까지 해뒀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전 10시쯤, 전체 공유로 올라온 최종본 파일을 열어보다가 그대로 얼어버렸습니다. 1페이지 작성자 칸에 제 이름은 흔적도 없고 팀장 이름만 단독으로 떡하니 박혀 있더라고요. 내용은 더 가관인데 제가 쓴 문장, 목차, 데이터 근거까지 조사 하나, 단어 두어 개만 살짝 바꿔치기해서 그대로 복붙한 수준이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속이 끓어서 팀장 자리로 가서 최대한 목소리 죽여서 물었습니다. 팀장님, 제안서 작성자 명의가 팀장님 단독으로 되어 있는데 이거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요. 그랬더니 팀장이 모니터에서 눈도 안 떼고 있다가 씩 웃더니 턱으로 회의실을 가리키더군요. 따라 들어오라고.
4층 소회의실 들어가자마자 팀장이 문부터 딸깍 잠그더니 목소리를 깔고 쏘아붙이더라고요. 박 대리, 너 자의식 과잉이야? 네가 쓴 그 기획안 그대로 광고주한테 나갔으면 우리는 바로 계약 해지야. 엉망인 걸 내가 주말 내내 뜯어고쳐서 살려놨더니 고맙다는 말은커녕 작성자 타령이야?
그래서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부족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언성을 높이면서 폭발하더라고요. 네가 부족하니까 내가 고생했지, 배은망덕하게 굴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 이게 다 네 커리어 챙겨주려고 내 이름 걸어준 거야. 계속 따지고 싶으면 시말서 쓸래? 라면서 저를 완전 몰아세웠습니다.
그 말 듣는데 눈물이 핑 도는데 여기서 울면 진짜 지는 거 같아서 입술만 피 나게 깨물고 나왔습니다. 옆자리 동료들은 다 들었으면서 모른 척 고개 돌리고요. 사장님이랑 팀장이 형 동생 하면서 골프 치는 사이라 인사팀에 말해봤자 너만 이상한 애 된다며 다들 입단속만 시키네요.
오늘도 팀장은 제가 만든 그 제안서로 본부장님한테 역시 이 팀장이라며 칭찬 듣고 탕비실에서 여유롭게 커피 마시고 있고, 저는 제 자리에서 속이 타서 소화제만 까먹고 있습니다. 이거 그냥 묻고 가야 하나요, 아니면 끝까지 들이받아야 하나요? 다행히 원본 파일이랑 작업 과정 전부 타임스탬프 찍힌 채로 개인 메일이랑 외장하드에 백업해 뒀습니다. 제발 현실적인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