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넘게 뿌리 염색이랑 커트 전부 맡긴 단골 미용실이었어요. 원장님이랑은 그냥 손님이 아니라 진짜 언니 동생처럼 지냈거든요. 오늘도 예약 시간 맞춰 들어갔는데, 샵 문 열자마자 향수 냄새 진하게 풍기면서 원장님이 입이 귀에 걸려서 서 있더라고요.
들어오자마자 대뜸 제대로 된 남자 물었다고 자랑을 시작하는데, 가위질 내내 입이 쉬질 않아요. 키 185에 어깨 태평양이고 목소리만 들어도 다리 풀린다는 둥, 완전 자기 취향 저격이라면서요. 저는 원래 남 연애사엔 1도 관심 없는데 계속 귀에 때려 박으니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만 쳤죠.
샴푸 의자에 누워서 머리 감겨주는데 갑자기 목소리 낮추더니 큭큭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근데 이 오빠 은근 야하더라? 허벅지 안쪽에 장미 문신 크게 있더니까. 처음엔 어? 했는데 볼수록 미치겠던데?”
그 말 듣는 순간 머리 뒤로 피가 쏠리더라고요. 제 남친 허벅지에도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장미 문신이 있거든요. 제가 직접 예쁘다고 골라준 그 문신. 샴푸 물소리에 심장 뛰는 소리 묻히길 바라면서 폰만 뚫어져라 봤어요. 손 떨리는 거 들키면 끝이니까.
원장님은 제가 굳은 줄도 모르고 더 신나서 떠들더라고요. “어제는 자기 동네 근처에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팔찌 세트를 덜컥 안겨주더라니까? 그러면서 우리 샵 단골 중에 너처럼 센스 있는 애 처음 본다고 내 칭찬을 그렇게 하더라.”
그 팔찌, 제 남친이 제 생일에 똑같이 사줬던 그 디자인이에요. 그리고 센스 있다는 그 멘트, 제가 남친한테 원장님 칭찬할 때 입에 달고 살던 말이 그대로더라고요. 가윗날이 머리끝 스칠 때마다 소름이 등줄기로 타고 올라왔는데, 티 안 내려고 가방 안에 손 넣어서 녹음 버튼 꾹 눌렀어요.
다 끝나고 거울 앞에서 드라이 마무리해주면서 윙크를 날리더라고요. “어때, 완전 예뻐졌지? 오늘 데이트 없어? 내가 기 다 넣어줬으니까 밤에 불태워!”
저는 그냥 헤헤 웃고 카드 찍고 나왔어요. 지금은 미용실 바로 건너편 카페 2층 창가 자리 잡고 앉아있어요. 유리창 너머로 샵 간판이랑 주차장 입구가 다 보이거든요. 폰에는 이미 남친 와이프 번호 저장해뒀어요. 나만 당할 순 없잖아요? 같이 다 같이 망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