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황해서 자판이 제대로 안 눌려요. 심장이 쿵쾅거려서 숨을 크게 쉬어도 글이 써질지 모르겠네요. 그냥 어디에라도 털어놓고 싶어서 적어봅니다.
엄마가 제가 대학 붙었다고 몇 년 동안 부은 적금을 깨서 사준 가방이에요. 매장에서 직원이 장갑 끼고 꺼내주던 그 가방, 더스트백에 곱게 싸서 제 방 책상 서랍 제일 안쪽에 모셔두고 아껴 썼어요. 저한테는 그냥 가방이 아니라 보물 1호였죠. 근데 그 가방 때문에 제 일상이 이렇게 진흙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2주 전 주말이었어요. 남친이랑 제 자취방 거실에 같이 있는데 여동생이 갑자기 연락 와서는 중요한 모임에 들고 갈 가방이 없다고 하루만 빌려달라고 졸라대더라고요. 처음엔 싫어서 안 된다고 했죠. 근데 옆에서 남친이 자기 여동생 철은 없지만 나쁜 애는 아니다, 곧 가족 될 사이인데 가방 하나 가지고 너무 매정하게 구냐며 계속 눈치를 주더라고요. 솔직히 그때 제가 그 가방 내밀면서 은근히 으쓱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결국 딱 하루 쓰고 흠집 하나 없이 돌려준다는 약속 받고 빌려줬어요.
다음 날 저녁에 현관에서 가방을 돌려받는데 받는 순간부터 느낌이 이상했어요. 원래 은은해야 할 가죽 냄새 대신 코를 찌르는 시큼한 본드 냄새가 훅 나고 가죽 결도 푸석푸석하더라고요. 불 켜고 자세히 보니까 로고 각인 간격도 삐뚤고 박음질도 울퉁불퉁했어요. 불안해서 안쪽 지퍼 포켓 뒤져서 일련번호를 찾아봤는데 원래 있던 번호는 없고 엉뚱한 숫자만 찍혀 있었어요. 누가 봐도 짝퉁이었죠.
바로 여동생한테 연락했더니 처음엔 언니가 원래 준 게 그거였다며 잡아떼더라고요. 제가 보증서랑 일련번호 대조해서 매장에 가서 확인하겠다고 하니까 그제야 울면서 실토했어요. 술자리에서 담배빵으로 구멍을 냈는데 너무 무서워서 시장에서 똑같이 생긴 짝퉁을 사다 바꿔놨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언니는 부자니까 가방 하나쯤 눈감아주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몇 년을 모은 돈으로 사준 건데 그게 할 말인가요?
더 기가 막힌 건 남친 태도예요. 어차피 애가 잘못했다고 울면서 사과했지 않냐, 가족끼리 가방 하나 가지고 신고니 배상이니 하는 건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저를 매정한 사람으로 몰아가더라고요. 지금도 가방은 나중에 내가 돈 벌어서 사주면 되지 네가 우리 가족 관계 다 망치고 있다며 몰아가고 있어요. 제가 진짜 예민한 건지 아니면 이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판단이 안 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