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일주일 뒤면 결혼식 올리는 32살 예비 신랑입니다. 지금 제 오른손에는 예비 신부가 어제 카페에 흘리고 간 휴대폰이 쥐어져 있고, 머리는 하얗게 비어서 아무 판단이 안 서네요. 어제 오후였습니다. 프랜차이즈 카페 창가 4인 테이블에 앉아 청첩장 발송 리스트 엑셀을 같이 보고 있는데, 그녀가 화장실 간다며 테이블 위에 폰을 그대로 뒀습니다. 30초도 안 돼 화면이 켜지더니 톡 미리보기가 떴습니다. '자기야 어제 진짜 미쳤었어. 담주에 유부녀 되면 더 짜릿하겠다 그치?'였습니다.
심장이 철렁해서 저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 비밀번호는 그녀 생일 6자리였고 한 번에 풀렸습니다. 평소엔 남 폰 보는 거 질색이라 한 번도 안 봤는데 그때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톡 들어가자마자 숨김친구, 차단목록, 잠금채팅방까지 뒤졌고, 거기서 쏟아진 대화가 천 개가 넘습니다. 상대가 한 명이 아닙니다. 헤어졌다는 전 남친, 회사 팀장이라는 사람, 동네 운동모임에서 만났다는 남자들, 심지어 제 대학 동기 녀석 이름까지 버젓이 있었습니다. 몇 달 전에도 알림 뜨는 거 보고 찜찜했던 적 있는데, 그때 예식장 계약금이랑 가전이며 들어간 돈 아까워서 그냥 눈 감고 넘어갔던 제가 바보였습니다.
내용은 더 가관입니다. 저랑 신혼집 소파 보러 다니던 날에도 다른 놈한테 '걔는 얼굴만 보면 역한데 돈은 잘 벌어 참는다', '결혼하면 평일에 더 편하게 볼 수 있어. 걔는 야근이라 집 비어' 이런 걸 보내고 있었습니다. 전 그냥 걔 인생 편하게 살게 해주는 현금인출기 취급이었습니다. 제가 결혼 선물이라고 사준 명품백 메고 다른 남자랑 호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찍은 사진까지 복구된 앨범에 고스란히 남아있더군요. 가구 매장 직원이 '두 분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할 때 속으로 비웃고 있었겠죠.
지금 예비 신부는 폰을 진짜 분실한 줄 알고 제 태블릿으로 '오빠 내 폰 혹시 안 보여? 카페에 둔 것 같아 ㅠㅠ 울고 싶어'라며 계속 연락합니다. 그 천사 코스프레 하는 얼굴 떠올리면 소름이 끼쳐서 손이 떨립니다. 이 폰 그냥 모르는 척 강가에 버리고 파혼 문자만 던질까요? 아니면 양가 부모 다 모인 자리에서 빔프로젝터로 톡 천 개를 띄워놓고 돌려주는 게 맞을까요? 검색해보니 제가 몰래 본 것도 걸릴 수 있다던데, 억울해서 잠이 안 옵니다. 제가 예민한 건가요? 진짜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