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견기업 회계팀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31살 여자입니다. 지금 손이 떨려서 글자가 두 개로 보이고 속이 울렁거려서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가슴에 맺힌 게 너무 커서 익명에라도 기대보려고 글 올립니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입사해서 7년 동안 진짜 독하게 모았습니다. 남들 해외여행 가고 명품 가방 메고 다닐 때 저는 퇴근길 시장 구석에서 세일 옷 건져 입고, 매일 새벽에 도시락 싸서 회사 탕비실에서 데워 먹었습니다. 그렇게 매달 200만 원씩, 한 달도 안 빼고 적금 부어서 5,600만 원 만들었어요. 제 통장 잔고가 아니라 제 인생 자체였고, 곧 결혼하면 보금자리 마련할 종잣돈이었습니다.
남자친구는 1년 좀 넘게 만난 사람입니다. 키 크고 말 잘하고 사업한다길래 저보다 훨씬 안정적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딱 3개월 전, 밤 11시쯤 회사 앞 카페로 울상이 돼서 찾아오더군요. 거래처 대금이 막혀서 당장 4,000만 원만 못 막으면 부도 나고 끝장이라면서요. 그러면서 제 두 손을 잡고 '이 고비만 넘기면 바로 혼인신고 하자, 평생 공주처럼 모시겠다'고 읍소했습니다.
솔직히 바로는 못 주겠다고 했습니다. 7년짜리 적금이라 중도해지 이자 손해도 컸고요. 근데 눈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을 두고 볼 수가 없었고, 곧 남편 될 사람인데 뭘 따지냐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은행 앱으로 적금 깨서 4,000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차용증? 그런 거 한 장 안 썼습니다. 주변에서 그 사람 씀씀이 이상하다, 도박하는 거 아니냐고 뜯어말렸을 때도 저는 '내 남자 질투해서 그러는 거지' 하면서 친구들 연락까지 차단했습니다.
송금하고 나서부터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답장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지더니 '사업 미팅 중이다, 투자자 만나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그러다 두 주 전부터 아예 번호가 없는 번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미쳐서 찾아 헤매는데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주말 골프장 클럽하우스 앞에서 그 인간이 처음 보는 여자랑 팔짱 끼고 명품 쇼핑백 양손에 가득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사업 자금은 핑계였고, 제 돈은 도박 빚 메우고 남은 걸로 그 여자와 호사하는 데 탕진한 거였습니다.
끝내 번호 바꿔 연락 닿은 놈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네가 사랑해서 준 거잖아, 차용증도 없는데 이제 와서 왜 그러냐, 연애하면서 서로 쓴 돈으로 치자'고 혀를 차더군요. 여러분 이게 사기가 아니면 뭔가요? 7년을 갈아 넣은 제 인생을 통째로 가져간 인간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당장 뭘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