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생 최대 경사여야 할 결혼식이 하루 만에 지옥으로 뒤집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제 웨딩홀에서 식 올리고 오늘 아침 호텔 연회장 옆 정산실 테이블에 앉아 축의금 장부를 정리하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장부 넘기다 말고 갑자기 굳어버리더군요.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서 저를 노려보는데, 뭐냐 싶어 장부를 낚아채 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거기 헤어진 지 3년도 넘은 전여친 풀네임 석 자가 또박또박 적혀 있고 옆에 1,000,000원이라고 찍혀 있더군요. 그것도 봉투에 이름까지 써서 직접 접수됐다는 메모와 함께요.
당연히 아내는 바로 폭발했습니다. 네가 연락한 거지? 아직도 만나는 거냐, 헤어진 여자가 왜 우리 결혼식에 100만원을 보내냐며 정산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데... 저는 진짜 억울해서 미치겠습니다.
솔직히 전여친이랑은 헤어질 때 깔끔하게 정리했고 그 뒤로 따로 만난 적도 없습니다. 결혼 준비하면서 옛생각이 나서 인사 차 '나 결혼한다, 잘 지내라' 하고 톡 한 번 보낸 게 전부거든요. 그게 그렇게 큰 죄입니까? 사회생활 예의상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근데 그 여자가 굳이 실명 박아서 거금을 보낸 건, 이건 대놓고 제 가정 박살 내겠다는 악의적인 의도 아닙니까? 소름 끼치지 않나요? 아내는 제 해명은 한마디도 안 듣고 '신뢰가 깨졌다' '이건 파혼감이다' 하면서 캐리어에 옷을 쑤셔 넣고 친정으로 가겠다고 난리입니다.
제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돈 보내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욕은 제가 다 먹어야 합니까? 아내가 예민하게 과잉반응하니까 제 체면은 바닥에 떨어졌고, 이게 장인어른 귀에라도 들어가면 제 입장이 뭐가 됩니까. 진짜 그 여자 소름 돋고 무섭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그날 정산실 소동으로부터 두 달이 지났고 제 삶은 드라마처럼 폭풍 속에 휘말렸습니다. 아내는 결국 짐을 싸 친정으로 들어가 변호사를 선임했고 저는 이혼 소송을 준비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제가 다니는 회사의 고위 임원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는데, 그 영향인지 저는 맡고 있던 핵심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고 사실상 한직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정과 커리어를 동시에 잃어가는 기분입니다.
소송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났습니다. 아내 측이 제출한 증거 목록에는 제 클라우드 휴지통에서 복구된 전여친과의 대화 캡처본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 100만원은 축하금이 아니었습니다. 결혼 전날 밤 제가 전여친에게 지금이라도 너한테 가고 싶다고 보낸 구질구질한 메시지에 대한 그녀의 마지막 조롱이자, 이 돈 먹고 내 인생에서 영원히 꺼져라는 의미의 퇴거비였습니다.
전여친은 제가 아내의 배경을 탐내면서도 자신을 보험처럼 붙잡아두려던 비겁함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가장 화려해야 할 결혼식 날 정산 장부에 실명으로 거액을 박아 넣어 저를 무너뜨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동네 사람들과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저는 전여친 축의금 때문에 파탄 난 사람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여전히 아내가 조금만 더 이해심이 넓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파멸하지 않았을 거라 원망하면서도, 거울 속에 비친 처참해진 제 모습을 보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