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복구로 밥 벌어먹은 지 10년 넘었다. 하드 속에 처박힌 인간 민낯이란 민낯은 다 봤다고 자부했는데 오늘은 진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다.
오전 10시도 안 돼서 작업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온 여자가 있었다. 30대 중반쯤, 로고가 요란한 명품백을 좁은 카운터 위에 턱 올려놓고 외장하드 하나를 내민다. 바닥에 떨어뜨렸더니 사진이 전부 증발했다며 꼭 찾아야 할 추억이 있다면서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더라. 원래 급한 건은 야간 할증 붙는데 그날은 그냥 알겠다 하고 밤새 장비를 돌렸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나도 성인군자는 아니다. 복구 프로그램이 섹터를 하나씩 긁어오면서 썸네일이 모니터에 둥둥 뜨는데 가족사진이겠거니 했던 예상은 3초 만에 박살 났다. 노출 수위 높은 사진이 폴더째로 쏟아지고 침대 위에서 찍은 영상 파일들이 썸네일만 봐도 훤히 보이더라. 스크롤을 내릴수록 끝이 없다. 족히 수천 장은 됐다.
압권은 같이 복구된 카카오톡 백업이었다. 대화방이 5~6개가 동시에 뜨는데 상대가 전부 남자고 호칭은 죄다 여보, 자기다. 어제는 누구랑 어디서 잤고 오늘은 누구한테 무슨 선물을 받았다는 일지가 줄줄이 나온다. 남편이라는 단어까지 버젓이 찍혀 있으니 유부녀인 건 숨길 생각도 안 한 거다. 나는 그 역겨운 대화들을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동시에 그 사진과 영상들을 내 개인 보관용 하드에 따로 옮겨 담고 있는 내 손가락이 묘하게 짜릿해지는 걸 느꼈다.
오늘 오후 3시쯤 복구 완료됐다고 연락하니 그 여자가 다시 작업실로 왔다. 좁은 모니터 앞에 나란히 서서 폴더를 하나씩 확인시켜줬다. 보통은 이런 거 뜨면 얼굴 빨개져서 감사합니다 하고 튀는 게 정상 아니냐. 근데 이 여자는 마우스 휠을 천천히 내리면서 입꼬리를 씰룩씰룩 올리더라. 부끄러움은 1도 없고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제일 야한 사진이 든 폴더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대놓고 말한다. "사장님, 이게 다 제 인기 비결이에요. 남자들이 저한테 한 번 빠지면 못 헤어 나와요. 이게 제 훈장 같은 건데 이걸 못 찾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하면서 껄껄 웃는데 그 웃음소리가 좁은 작업실 벽에 쩌렁쩌렁 울렸다.
남편이 받을 상처니 도덕이니 하는 고민은 0.1초도 안 하는 눈치였다. 그냥 자기가 얼마나 팔리는 여자인지 얼마나 많은 남자가 자기한테 줄 서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다. 그 뻔뻔함에 내가 멍하니 서 있으니까 여자는 고맙다며 만 원짜리 몇 장을 카운터에 툭 던져놓고 진한 향수 냄새만 남긴 채 유유히 나갔다.
셔터 내리고 혼자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 향수 냄새가 에어컨 바람을 타고 계속 맴돈다. 솔직히 오늘 밤에도 그 '인기 비결' 폴더를 한 번 더 열어볼 것 같다. 인간 욕망이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역겨운지 구경하면서 그걸 구경하는 내 자신이 제일 역겹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