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무 긴장해서 키보드 치는 것조차 버벅거려요. 그래도 이 순간을 안 남기면 나중에 내가 미칠 것 같아서 불 꺼진 사무실 책상에 숨어 폰으로 급하게 써요.
맨날 회의 때 저보고 '기본이 안 됐다'며 전 직원 앞에서 망신 주고, 제가 화장실 5분만 다녀와도 '어디 갔다 왔냐'며 시간까지 체크하던 박 팀장 있잖아요. 그 인간 오늘 거래처 접대 있다며 6시 땡하자마자 코트 휘날리며 나갔는데, 노트북 전원도 안 끄고 그냥 덮어만 놓고 갔더라고요. 책상 위에 덮인 노트북에서 전원 불빛이 깜빡이는 거 보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더라고요.
평소에 저 가스라이팅할 때 짓던 그 서늘한 비웃음이 확 스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덮개를 젖혔어요. 마침 평소에 어깨너머로 비번 치는 걸 두어 번 봤거든요. 0113, 자기 생일. 설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번에 띡 풀리네요. 소름이 쫙 끼쳤어요.
바로 가방에 있던 개인 USB 꽂고 바탕화면에 '중요'라고 떡하니 있는 폴더 통째로 드래그해서 복사 눌렀어요. 파일 목록 뜨는데 '신입직원 평가_최종.xlsx'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열어보니까 제 이름 칸에 대놓고 '조만간 권고사직 유도, 자진퇴사 압박 요망'이라고 적혀 있고, 제가 하지도 않은 실수들을 날짜별로 정리해서 증거인 양 꾸며놨더라고요. 진짜 피가 거꾸로 솟았어요.
더 기가 막힌 건 카톡이었어요. 동기들 단톡방에서 제 외모 비하하는 건 기본이고, 제가 입고 온 옷 보고 '오늘 쟤 꼴 왜 저러냐, 시장 바닥에서 주워 입었냐 ㅋㅋ'라며 낄낄대는 게 다 떠 있더라고요. 그리고 유부남 주제에 이번에 들어온 신입 최 주임한테 '주말에 오빠 차로 드라이브 갈래?'라고 찝쩍대는 메시지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완전 쓰레기 그 자체더라고요.
지금 복사 바 90% 넘었어요. 이거 다 뽑히면 저 그냥 묻고 갈 생각 없어요. 이 새끼가 제 인생 조진 만큼 저도 걔 인생 제대로 쓰레기통에 처박을 거예요. 불 다 꺼진 사무실에 노트북 팬 돌아가는 윙 소리만 울리는데, 무서운데 미치게 짜릿해요. 제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죠? 진짜 이 인간은 사람 취급할 가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