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 차, 회계법인 사무직으로 일하며 남편보다 내 손때 묻은 물건에 더 애정을 쏟으며 사는 30대입니다.
일이 꼬인 건 지난주 금요일 저녁이었어요. 평소에도 제 옷장 안쪽 선반까지 기웃거리던 시누이가 갑자기 한없이 공손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더군요. 회사 동기 결혼식이 있다며 제 L사 백을 딱 하루만 빌려달라는 겁니다. 그 가방은 제가 첫 성과급 받고 매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산, 제 분신 같은 물건이거든요.
당연히 처음엔 거절했죠. 그랬더니 옆 소파에 앉아 있던 남편이 가족끼리 너무 계산적으로 굴지 말라며, 동생이 저렇게까지 부탁하는데 한 번만 들어주라고 계속 떠미는 겁니다. 결국 큰맘 먹고 가죽 클리너로 꼼꼼히 닦고 더스트백에 넣어 건네면서 바닥에 절대 두지 말고 스트랩도 꼬이지 않게 하라고 열 번도 넘게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후 현관 앞에서 돌려받은 가방을 꺼내는 순간 손이 얼어붙었습니다. 가방 전면 가죽이 날카로운 것에 걸린 듯 10cm 넘게 길게 찢어져 속가죽이 훤히 드러나 있었거든요. 누가 봐도 살짝 스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화가 나서 시누이에게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따졌더니 돌아오는 말이 더 가관이었어요. 결혼식 뒤풀이 때 의자 등받이에 걸어뒀는데 누가 지나가다 긁은 것 같다면서, 언니 그거 산 지 2년 넘었잖아 요즘엔 디자인도 촌스러워서 사실 들기도 민망했다, 이참에 그냥 버리고 예쁜 걸로 새로 사라는 겁니다. 사과 한마디 없이 제 취향까지 평가하며 저를 쩨쩨한 사람으로 몰아가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옆에 있던 남편도 가방이야 수선하면 되지 않냐며 동생한테 너무 각박하게 굴지 말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제가 예민한 건가요? 찢긴 건 제 가방인데 왜 제가 유행 지난 물건에 집착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사실 빌려주기 전부터 불안해서 가방 안쪽 지퍼 주머니에 소형 위치추적기를 넣어뒀거든요. 기록을 뽑아보니 결혼식장은커녕 하루 종일 도심 번화가 클럽 골목에만 머물러 있더라고요. 남의 귀한 물건 들고 밤새 놀다 망가뜨려 놓고 유행 타령이라니, 저는 절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