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내 옆에 붙어 있던 애가 결국 내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그 애는 태어날 때부터 스포트라이트 받는 애였고 나는 그 옆에서 가방 들어주고 사진 찍어주는 병풍이었음. 걔가 질려서 안 입는다는 명품 자켓, 원피스 같은 거 툭 던져주면 나는 고마워 하면서도 속으로는 개쪽팔리고 비참해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그걸 또 안 받으면 뒤에서 흉볼까 봐 꾸역꾸역 받아 입었다.
남친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건진 스펙 같은 존재였는데 걔는 맨날 너 정도면 저 정도 남자가 딱이지 하면서 비웃었음. 솔직히 나도 걔가 너무 배 아파서 예전에 걔가 사귀던 남자한테 익명으로 걔 험담 퍼뜨려서 헤어지게 만든 적 있다. 그때는 걔 완벽한 연애 망가지는 거 보는 게 내 유일한 복수라고 생각했으니까.
오늘 남친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약속 있다더니 나가자마자 가슴이 철렁해서 나도 모르게 뒤를 밟았다. 외곽도로 끝자락에 있는 간판 불빛 깜빡이는 모텔 주차장, 거기 세워진 걔 차 조수석에서 내 남친이 내리더라. 둘이 눈 마주치자마자 손 딱 잡고 로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 보고 나는 주차장 한가운데 얼음처럼 굳어서 숨도 못 쉬었다. 당장 뛰어가서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 입은 코트마저 걔가 작년에 입다 버린 거라는 생각에 발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한 시간쯤 지났나 카톡 알림이 울렸다. 침대 헤드랑 시트 한 귀퉁이 보이는 사진이었다. 거기에 야 껍데기는 네가 계속 가져. 알맹이는 내가 가져갈게. 어차피 넌 그 알맹이 담을 그릇도 못 되잖아? ㅎ 이렇게 와 있었다.
껍데기? 사람을 껍데기 취급하는 그 오만함에 피가 거꾸로 솟더라. 내 인생에서 제일 괜찮은 거라 생각했던 걸 그렇게 쓰레기 취급하면서까지 가져가야 속이 시원하냐. 나는 모텔 담벼락 밖에서 걔가 준 옷 입고 덜덜 떨고 있는데 저 안에서는 둘이 내 무력함을 안주 삼아 웃고 있겠지.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