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해 가을 결혼 앞두고 있는 29살 여자입니다. 중견기업 회계팀 대리로 일하고 있고 남친이랑도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서 제가 이런 글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지금도 손이 떨리고 머리가 하얘져서 글이 두서없어도 이해해주세요.
어제 예비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어요. 어머님이 잠깐 화장실 가신 사이 거실 소파에 걸쳐둔 가방 입구가 벌어져 있었는데, 그 틈으로 가죽 장지갑이 삐죽 나와 있고 지갑 사이에 끼운 접힌 쪽지에서 제 이름이 보이더라고요. 뭐지 싶어서 힐끗 봤는데 제 이름이랑 생년월일, 태어난 시각까지 또박또박 적힌 제 사주 쪽지였어요.
더 기가 막힌 건 그 쪽지 옆에 꽂힌 두툼한 명함 다발이었어요. 전국 용하다는 점집, 무당집 명함이 색깔별로 5~6장은 족히 돼 보이더라고요. 수도권부터 지방까지 유명한 곳은 다 긁어모은 느낌이었어요. 소름이 쫙 끼쳐서 바로 남친 팔 잡아끌고 안방 쪽으로 가서 이게 뭐냐, 어머님이 내 사주 들고 점집 돌아다니시는 거냐고 따져 물었어요.
남친이 얼굴 새하얘지더니 결국 털어놓더군요. 결혼 날짜 잡기 전부터 어머님이 제 쪽지 들고 소문난 곳은 다 찾아다니셨대요. 문제는 거기마다 제 사주 보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소리를 했다는 거예요. 남편 복 다 갉아먹을 팔자라느니, 남편 재물운이랑 앞길을 막는 사주라느니, 같이 살면 남편 고생시킨다느니 그런 악담을 쏟아냈다는 거예요.
그 말을 어머님이 그대로 믿고 남친한테 저랑 결혼하면 아들 인생 망한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계속 흔들었다는 거예요. 제 앞에서는 말 한마디에 하트 붙여가며 세상 다정하게 굴던 분이 뒤에선 제 사주를 도둑질해 들고 다니며 그런 천박한 소리를 듣고 다녔다니 배신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미치겠더라고요.
근데 더 정 떨어지는 건 남친 태도예요. 하는 말이 어머니가 외아들 하나라 걱정돼서 그러신 거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니 이해해주면 안 되냐는 거예요. 이해요? 제 사주가 무당들 책상 위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남편 잡아먹을 년 취급을 받았는데 그걸 제가 어떻게 이해해요. 제 인생이 무슨 전시품도 아니고 이런 취급 받으면서 결혼을 해야 하나 싶어요.
2. 무속적 판단을 근거로 타인의 인격을 폄하하고 이를 가족 내부에 유포한 행위는 명예감정 훼손의 소지가 큽니다.
3. 혼인은 신뢰를 기초로 하는 인격적 결합입니다. 그 기초가 훼손된 이상 귀하는 관계를 재검토할 정당한 사유를 확보하셨습니다.
4. 감정적 대응보다 증거 확보가 우선입니다. 명함 사진, 남친과의 대화 기록 등을 체계적으로 보존하십시오. 감정은 휘발되나 증거는 남습니다.
5. 이러한 가풍이 지배적인 공동체와의 결합이 향후 귀하의 삶에 실익이 되는지 냉정하게 계산해 보시길 권합니다.
글을 올린 뒤 남친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눴지만 결론은 평행선이었어요. 남친은 어머니의 무속 믿음을 그저 연세 든 분의 취미나 소신 정도로 가볍게 여기며 제가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몰아갔어요. 특히 어머니가 직접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냐며 자기가 중간에서 잘 조율하면 된다는 말을 반복하는데 그 순간 정이 완전히 식어버렸어요.
결국 그 자리에서 파혼을 통보하고 짐을 챙겨 나왔어요. 부모님께도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시며 당장 보증금 정리해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어요. 사주를 몰래 본 것 자체보다 그 비이성적인 말을 근거로 저를 평가하고 흔들던 그 집 분위기를 더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황당하게도 파혼 소식을 들은 예비 시어머니는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무당이 말한 대로 성깔이 보통 아니네, 아들 잡아먹기 전에 스스로 나가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셨어요. 소름이 끼치더군요. 조상이 도왔다는 댓글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마음을 추스르며 제가 미리 알아봤던 시댁 재산 내역이나 지인 변호사를 통해 들었던 정보들은 더 엮여봐야 손해라 생각해 가슴속에 묻어두려 해요.